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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전의 문화재 다시보기] <30> 순흥 읍내리 신라 벽화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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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전의 문화재 다시보기] <30> 순흥 읍내리 신라 벽화무덤

입력
2010.04.13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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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벽화는 삼국시대 지배자 급의 무덤에 남아있다. 특히 고구려 벽화무덤이 유명한 반면 백제나 가야 신라의 경우에는 몇 예에 불가하다. 특히 신라의 무덤벽화는 당시 왕도인 경주에서 전혀 발견된 예가 없다. 그것은 무덤을 만드는 방식이 고구려나 백제와 달리 돌무지 덧널무덤인 소위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이라는 특수한 구조였기 때문에 돌방무덤인 석실분(石室墳)과 같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통일신라기에 가까워 오면 신라에도 돌방무덤이 축조되지만 벽화는 마련되지 않았다. 그런데 신라의 변두리에 해당되는 영주 순흥 지역의 신라무덤에서 벽화가 있는 돌방무덤이 두 곳 확인됐다. 그 하나가 1971년 발견된 영주시 순흥면 태장동에 있는 신라 於宿述干墓(어숙술간묘)이고 또 다른 게 1985년에 발견된 읍내리 신라무덤이다. 어숙술간묘도 도굴에 의해 발견되었지만 벽화를 그리기 위해 먼저 벽면에 칠한 회를 다려먹으면 만병통치라는 미신적인 속설에 너도나도 회벽을 뜯어가 겨우 남은 일부 벽화와 명문에 의해 어숙술간묘임을 알게 되었다.

그로부터 15년 후 읍내리 벽화고분 역시 도굴에 의해 발견되었다. 1980년대 당시 대구지역의 골동품상인들 사이에 순흥지역의 한 무덤 안에 벽화가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이 소문이 대구대학교 역사교육과 이명식 교수의 귀에 들어와 1985년 1월29일 동계유적지표조사를 위해 학생들과 같이 이곳을 찾았다. 눈 덮인 읍내리 야산에서 이상하게도 눈이 쌓이지 않은 한 무덤이 눈에 들어왔다. 무덤의 일부에 도굴 구멍이 나 눈이 쌓이지 않았던 것이다. 도굴 구멍은 겨우 한 사람 들어갈 수 있는 좁은 구멍이었으나 자신도 모르게 내부를 확인하고자 몸을 들이밀었다. 내부를 본 순간 심장이 멎을 정도의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벽화가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도굴범이 무덤내의 유물을 싹쓸이해 갔고 인골만 도굴로 인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어쨌든 도굴된 유물은 알 길이 없었지만 그보다도 신라벽화의 발견만 해도 국사교과서를 바꿀 수 있는 파괴력을 갖춘 일이었다. 더구나 소위 연대를 추정해 볼 수 있는 己未(기미)라는 干支(간지)가 있어 무덤의 연대를 추정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말하자면 5-6세기에 조성된 무덤으로 고구려벽화에 보이는 사신도(四神圖)와는 전혀 달리 생활풍속을 이해할 수 있는 그림들로 가득히 매워져 있었다.

무덤 내에서 발견된 주인공의 인골은 40대 남성과 20대는 여성으로 여성이 먼저 죽고 난 후 세월이 지나 남성이 죽어 함께 묻힌 부부묘임이 밝혀졌고 아울러 6명의 여성을 순장한 사실도 알게 되었다. 도굴된 유물의 행방은 지금도 알 길이 없다.

경기문화재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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