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anger)' '증오(hatred)' '맹목(blindness)'등. 최근 미국 내에서 정치 상황을 거론할 때 자주 등장하는 단어들이다. 여기엔 민주당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공화당 세력의 격렬한 반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분노에 가득 찬 공화당 지지자들의 정치적 반대 정도가 맹목적 증오의 수준에까지 이른 현실을 반영한다. 이러한 지경에서는 그 어떤 정책에 대해서도 설득이 이루어질 수 없다. 이를테면 험난한 과정을 거쳐 입법화된 건강보험 개혁안의 내용이야 어떻든 상관없이 증오의 위력은 그것을 처음부터 '악(惡)'으로 규정한다.
'묻지마 반대'가 증폭시키고 있는 미국 정치의 극단적 단절 및 양극화 현상은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미 퀴니피액 대학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공화당 지지자 가운데 오바마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해 긍정적 대답을 한 비율은 고작 전체의 9%에 불과했다. 건강보험개혁에 대한 호의적 응답은 이보다 더 낮은 7%에 그쳤다. 반대로 민주당 세력의 오바마 대통령 지지는 전폭적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강한 보수 성향의 한 평론가가 곧 발간할 책을 둘러싸고 "시민들의 (물리적) 폭동을 선동하려 한다"는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은 한 예에 불과하다. 이와 관련, 심지어는 남북 전쟁에 빗대 "미국 사회가 (새로운) 시민 전쟁에 빠져들고 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이처럼 맹목이 득세하는 것은 미국 정치가 합리적 이성의 영역에서 밀려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면 정치에서 사실관계나 정책적 판단은 물론이고 이념이나 노선까지도 그 중요성을 잃고 만다. 또 정치적 반대에 더 이상 근거는 필요치 않으며 정치현실은 있는 대로가 아니라 믿고 싶은 대로 왜곡된다. 더 심하게는 종교적 신념에 버금가는 맹목적 자기확신이 반대의 강도를 괴물처럼 키워간다. 미 보수층의 간판 스타로 떠오른 세라 페일린 전 공화당 부통령 후보가 오바마 대통령을 공격하면서 총격을 연상시키려는 듯 "재장전하라"고 외칠 때 호소의 타깃은 이러한 맹목적 본능이다. 여기에 더해 익명성을 수단으로 분노와 증오에 부채질을 해대는 인터넷의 야만성도 미국의 당파적 네티즌들을 더욱 눈멀게 한다.
이 같은 정치적 단면들은 실은 우리 정치에서 훨씬 낯익은 것들이어서 미국도 이제 별반 다를 것이 없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우리의 경우, 독재ㆍ권위주의 시대는 별도로 치고 이후 정권 성향이 보수였는지, 진보였는지는 결정적 변수가 아니었다. 상대적 진보파가 집권했을 때에는 보수의 맹목이 보다 더 극성이었고 보수파 정권에서는 서로의 입장과 태도가 뒤바뀌었다. 마치 그것이 야당의 유일한 무기이자 운명인 것처럼 말이다. 요즈음에는 여당 내부의 정파 사이에서 조차도 비슷한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것을 과연 우리 정치의 다양성이라고 강변할 수 있을까. 어떤 경우든 정치적 맹목성은 권력지향 일변도, 권력추구 지상주의 등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으로 읽혀진다.
물론 정치가 이성의 힘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보다 실천적인 의지는 확고한 신념에서 비롯되는 만큼 정치적 신념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신념의 충돌을 넘어 정치가 작동하려면 합리적 이성에 기초해 금도를 벗어나지 않으려는 의식적 노력이 있어야 한다. 진보든 보수든 맹목적 분노에 휩싸이고 정치인들이 그것을 부추길 때 제대로 된 정치가 작동할 여지는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고태성 국제부장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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