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주식을 해보지 않았다.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투자라는 것은 생계가 완전히 해결된 사람들이 나머지 돈으로 하는 것이라는, 지극히 유아적인 경제감각 때문이었다. 성인으로 사는 동안 한 번도 생계가 완전히 해결되고 돈이 남는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내게 '개미'는 베르나르 베르베르 소설의 주인공인 지극히 사회적인 곤충이었고, '큰 손'은 인심이 좋은 사람을 지칭하는 은유였으며, '바닥 쳤다'는 것은 삶의 고통에서 허우적거리는 후배를 위로할 때나 쓰는 말이었다.
신기한 '자본주의 체험'
두 달 전 영화계 동료들과의 술자리였다. 한 친구가 자신의 주식투자 성공담을 신나게 늘어놨다. 지속되는 영화계 불황에 지쳐있던 좌중의 일치된 반응은 부러움이었다. 그 부러움은 그가 "조금만 투자하면 술값 정도는 늘 벌 수 있다"고 말할 때 최고조에 올랐다. 역시 그날 술값도 그 친구가 호기롭게 냈다. 집에 오면서 내내 생각했다. '자본주의 속에 살면서 자본을 외면하는 것은 게으른 것'이라는 그 친구의 말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술값을 걱정하지 않는다면 진짜 행복할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다음날 나는 거래 은행에 가서 주식 계좌를 만들었다. 마이너스 통장에서 삼백을 꺼내서 인터넷 거래를 시작했다. 첫 시작은 친구가 유망하다고 얘기하던 회사였다. 저녁 때 보니 5만원이 올라있었다. 신기했다. 아무 노동도 없이 5만원을 벌었다.
인터넷 주식 사이트를 열어보는 일이 잦아졌다. 주식 좀 안다는 친구들과의 통화도 잦아졌다. 한 시간 동안 초단위로 변하는 주가를 보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았다. 날씨가 추워도 주가가 변했고, 독감이 기승을 부려도 주가는 변했고, 연예인이 결혼을 해도 주가가 변했다. 세상의 모든 일은 주식 시장에서 돈으로 반영됐다. 그 속에서 나는 사고, 팔고, 버리고, 지르고, 갈아타고, 버텼다.
둘러보니 수많은 사람이 주식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을 만나도 주로 주식 얘기를 했다. 모두가 세상의 일들을 주가로 환산해서 해석하는데 일가견이 있었다. 어떤 사건에 대한 도덕적 판단보다는 그것이 주가에 미치는 영향이 더 중요했다. 또한 모두가 아직 발표되지 않은 특급 정보들도 가지고 있었다. 손해 보는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그들에게 돈의 실체는 인터넷 주식 사이트의 숫자였다. 친구의 말과는 달리 주식이 올랐다고 그 돈을 빼서 술값으로 쓰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오르면 그 돈으로 그만큼의 주식을 더 사 숫자를 불렸다. 그 숫자를 늘려주면 무조건 좋은 회사가 되었다.
주식의 세상에서 절대의 윤리는 자본이었다. 그 세상 속에서 선사시대의 어느 벌판에서처럼 개미들과 공룡들이 뒤엉켜 매일매일 일상의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개미들은 집요하게 공룡의 몸으로 기어올랐고, 공룡들은 필사적으로 몸을 뒤채며 몸에 붙은 개미들을 떨어내려 하고 있었다.
되찾은 일상의 평화
며칠 전, 나는 모든 주식을 팔았다. 처음 원금 삼백에 15만원 정도가 더 붙어 있었다. 마이너스 통장의 이자를 갚으면 거의 본전이었다. 오를 때마다 썼던 술값은 이 대차대조표에는 포함시키지 않기로 했다. 아침의 평화를 회복해야 했다. 오후의 나른한 독서도 회복해야 했고, 친구들과 주식 말고 다른 이야기로 즐거운 술자리도 회복시켜야 했다.
무엇보다 세상을 움직이는 자본의 힘을 망각해야 했다. 그래야 거기에 눌려있던 내 삶의 다른 건강한 것들이 다시 살아날 것 같았다. 자본주의 속에서 자본을 외면하는 것은 게으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주 성실하고 건강하게 사는 또 하나의 길이었다.
육상효 인하대 교수·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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