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에 가보셨는지요? 옛날이나 요즘이나 주말의 호텔 커피숍은 맞선을 보는 남녀들로 붐빕니다. 그러나 지난 20년 사이에 호텔 맞선 풍경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1970~80년대만 해도 호텔에는 할머니들이 많았습니다. 중매를 하러 나온 '뚜 여사님'들이지요.
이들을 통해 결혼이 성사되면 거액의 사례금이 오갑니다. 중매 과정에서 부풀어진 과다 혼수문제는 한 때 사회적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들 할머니로 상징되던 중매방식은 거의 사라진 듯 보입니다. 결혼문화의 두드러진 변화이자 바람직한 양상입니다.
결혼 현장에서도 변화의 바람은 불고 있습니다. 이 변화의 주체는 바로 여성들입니다.
최근 초혼 7쌍 중 1쌍, 즉 전체의 14.3%가 연상녀ㆍ연하남 부부라고 통계청이 발표했습니다. 그 동안 전통적인 결혼공식은 '남고여저' 였습니다. 남성의 나이, 학력, 경제력 등이 여성보다 높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권위와 경제력을 갖춘 남성이 가장이 돼 자기보다 어리고, 경제력이 덜한 배우자를 돌보는 가부장적 구조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여성의 나이가 더 많은 커플이 늘어나면서 결혼구조도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서울 강남의 부동산 부자인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가 사위로 삼은 사람은 대기업에 다니는 평범하고 성실한 남성이었습니다. 그 정도의 재력이면 마음먹기에 따라 열쇠 3개, 아니 그 이상을 주고 '사'자 사위를 맞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평범한 회사원이라니요?
그 아버지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내 딸을 남부럽지 않게 잘 키워 놓았는데 굳이 사위를 모셔올 필요가 있겠느냐? 딸이 사랑하는 사람이 최고 아닌가?"라고요. 딸은 프랑스에서 예술철학 박사학위를 받은 재원이었으니 오히려 남성 쪽에서 모셔갈 만하지요.
바람직한 것은 이 같은 판단을 하는 부모가 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위 하나 잘 얻어서 집안의 위신 세우려던 열쇠 3개의 시대가 저물고 있습니다. 대신 '개용남', 그러니까 개천에서 용난 사람보다는 원만한 가정에서 자란 평범한 상대를 찾는 경향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자녀를 한두 명 밖에 안 낳는 핵가족 시대에는 딸, 아들 불문하고 교육에 최선을 다합니다. 어디에 내놓아도 1등 신랑ㆍ신부감인 자녀들이 덩달아 급증한 이유이지요. '사'자 사위를 찾아야 할 까닭이 없는 것입니다. 당사자의 행복추구를 중심으로 결혼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연하남과 결혼하는 여성도 낯설지 않게 됐습니다. 부모가 잘 키운 당당하고 잘난 딸이 주도하는 '역 열쇠 3개'의 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습니다.
연상녀와 결혼하는 연하남은 사실 열쇠 3개보다 더 많은 것을 누립니다. 연상녀는 사회와 인생의 경험이 풍부합니다. 직장생활도 오래한 덕분에 경제력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정신적으로, 재정적으로 안정된 결혼생활이 가능하다는 얘기입니다.
연상녀ㆍ연하남 커플과 연상남ㆍ연하녀 커플의 남녀 연봉차이를 보면 연상녀ㆍ연하남 커플의 연봉차가 1,098만원으로 일반커플보다 500만원 정도 적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성의 연봉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지요. 열쇠 3개를 안 주고도 연하남과 결혼하는 여성이 늘고 있습니다. 결혼문화의 커다란 변화를 상징하는 의미있는 사건입니다.
■ 남녀본색
결혼정보회사 선우 부설 한국결혼문화연구소는 2000년부터 2009년까지 10년 동안 선우를 통해 결혼한 연하커플(여성연상·남녀동갑) 326명과 연상커플(남성 4년이상 연상) 1,018명 등 2,136명을 대상으로 연상·연하커플의 남녀간 연봉차이를 조사했다. 남녀간 연봉차이는 남성연봉에서 여성연봉을 뺀 액수다.
조사 결과 여성이 연상인 연하커플의 연봉차는 1,098만원, 남성이 연상인 연상커플의 연봉차는 1,520만원으로 연하커플의 연봉차가 422만원 더 적은 것으로 드러났다. 남성연봉과의 차이가 422만원 더 적다는 것은 여성의 나이가 많을수록 직장생활을 오래 하므로 그만큼 연봉이 올라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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