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이 투폴레프(1888~1972)는 '러시아 항공산업의 아버지'다. 1918년 중앙항공유체역학연구소 설립 이후 그가 설계ㆍ제작에 참여한 중ㆍ장거리 폭격기와 민간 여객기는 100종이 넘는다. 1944년 미국의 B-29 폭격기를 복제한 TU-4, 중국이 지금도 운용 중인 주력 폭격기 TU-16 등이 대표작이다. 러시아는 항공기 개발자 이름을 항공기 식별명으로 사용하는 게 전통이다. TU는 투폴레프, MiG(Mikoyan-i-Gurevich)는 아르촘 미코얀과 미하일 구레비치, Su는 파벨 수호이의 이름에서 따왔다. '-'뒤의 숫자는 항공기 개발 순서다.
■ 러시아의 TU 여객기는 폭격기에서 파생했다. 1950년대 당시 최대 프로펠러 여객기 TU-114, 최초의 제트 여객기 중 하나인 TU-104는 모두 54년 투폴레프의 설계ㆍ제작으로 처녀 비행에 성공한 대형 폭격기 TU-95를 모태로 삼은 것들이다. 63년부터는 그의 아들 알렉세이 투폴레프도 항공기 설계에 참여했다. 알렉세이는 러시아가 콩코드기에 대적하기 위해 모양까지 비슷하게 만든 초음속 여객기 TU-144 제작팀 수석설계사로 활동했다. 그는 부친 사망 후 설계팀 부서장직을 물려받아 70ㆍ80년대 가변익 폭격기 TU-26, TU-160을 개발했다.
■ 폴란드 대통령 등 96명의 목숨을 앗아간 TU-154는 러시아가 미국 보잉사의 727기와 경쟁하려고 만든 여객기다. 엔진 3개를 수직날개 밑 등 항공기 후미에 배치한 외양이 B727과 똑같다. 상승력이 높고 저속ㆍ단거리 이착륙이 가능해 소규모 공항 운항에 적합한 기종이다. 덕분에 한때 러시아 국영 아에로플로트 이용 여객의 절반가량이 TU-154를 탔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TU-154의 잇따른 추락사고는 러시아 여객기에 대한 신뢰 저하로 이어져 연간 100대에 달하던 러시아제 여객기 생산ㆍ판매 대수는 7~8대 수준으로 떨어졌다.
■ 그러나 러시아는 여전히 항공산업 강국이다. 미그ㆍ수호이ㆍ일류신ㆍ투폴레프ㆍ야코블레프ㆍ밀 등 6개 회사는 서구식 경영시스템을 도입해 비효율을 제거하면서 차세대 고등훈련기 Yak-130, 수호이 수퍼제트 100 등 첨단 군용ㆍ민간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여객기 추락은 비극적 참사지만 TU-154와 같은 노후 여객기의 추락은 러시아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러시아제 노후 여객기를 운용 중인 항공사의 대체 동기를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스몰렌스크 공항 인근 사고 현장에서 헌화하는 푸틴 총리를 보며 떠올린 패러독스다.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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