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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꽃을 사랑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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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꽃을 사랑하는 법

입력
2010.04.13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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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나들이를 두 번 다녀왔다. 보름 전 서해의 섬으로, 지난 주에는 서울 근교 가평으로. 두 군데 모두 야생화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꽃이 많기로 소문난 곳이다. 야생화동호회들은 꽃을 보고 와서 인터넷 게시판이나 개인 블로그에 사진을 올리고 후기를 쓸 때 꽃 자생지를 잘 밝히지 않는다. 알려지면 꽃들이 사람 발길에 치이고 손을 타서 몸살을 앓는 일이 흔하기 때문이다.

예쁘다고 캐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꽃 사진 찍는다고 마구 밟고 돌아다니거나 가만히 있는 꽃을 자기가 원하는 모양대로 연출하느라 줄기를 이리 휘고 저리 구부리고, 더 예뻐 보이라고 분무기로 물을 뿜어 괴롭히기도 한다. 사진 찍었을 때 깔끔해 보이라고 꽃의 발치를 덮고 있는 낙엽을 걷어내기도 한다. 아직 쌀쌀한 기운을 견디느라 덮고 있던 낙엽 이불을 뺏긴 꽃은 추위에 떨다 시들고 만다.

보름 전 섬에 가서 선착장에 내렸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주민들이 걸어놓은 현수막이었다. 꽃들이 다치지 않게 조심해달라, 그래야 내년에도 볼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얼마나 시달렸으면….

가평의 산도 다르지 않았다. 2년 전 처음 갔을 때 꽃멀미를 일으킬 만큼 많았던 꽃들이 많이 사라져버렸다. 온 산에 분홍 페인트를 쏟아부은 듯 대규모 군락을 이뤘던 얼레지 꽃밭은 뭉텅뭉텅 빈 자리가 났고, 흔하디 흔했던 바람꽃 종류들은 개체 수가 확 줄었다. 새끼손톱 만한 꽃과 솜털로 덮인 가녀린 줄기가 귀여운 노루귀는 꽃 사진 모델로 인기가 높은 탓인지 수난이 더 심했다. 키가 새끼손가락만한 이 작은 꽃을 찍겠다고 땅에 바짝 엎드린 채 카메라를 들이대는 사람들이 지나간 자리마다 흙이 패이고 다른 꽃들이 밟힌 자국이 선명했다.

사람들 극성에 꽃들이 고생하기 시작한 지도 한참 됐다. 서울 근교 천마산의 자생식물 중 감자란은 자취를 감췄다. 투명하게 하늘거리는 보랏빛 꽃이 아름다운 깽깽이풀은 눈에 띄었다 하면 캐어가는 사람들 때문에 남아나질 않는다. 최근 2,3년 사이 야생화동호회들의 봄철 필수 코스로 자리잡은 강원도 정선의 동강할미꽃이 고생할까 봐 걱정이다.

꽃도 생명이다. 마구 만지고, 꺾고, 캐어가면 좋아할 리 없다. 사진을 못 찍더라도 꽃을 아프게 하기보다는 눈으로 보기만 하고 마음에 품는 게 낫다. 평소 보기 힘든 야생종 꽃들을 보겠다고 먼 데까지 차를 타고 가는 것은 탄소 배출량을 늘려 지구를 덥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정말로 꽃을 사랑한다면, 가까운 데 있는 것부터 찾아보는 것도 괜찮다. 서울 도심에도 조금만 둘러보면 작고 예쁜 꽃이 많다. 가로수나 화단 가장자리에 낮게 울타리 치듯 심는 회양목은 지금 꽃을 달고 있다. 잎 색깔과 비슷해서 꽃 핀 줄도 모르고들 지나치지만, 귀여운 데다 향기도 난다. 깊이 갈라진 하트형 흰 꽃잎이 토끼 귀를 닮은 눈곱만한 별꽃, 초록 풀밭에 별을 뿌려놓은 듯 파란 꽃이 어여쁜 개불알풀, 줄기를 빙 둘러 층층이 매단 둥근 잎 겨드랑이에서 발돋움하듯 붉은 꽃을 내미는 광대나물…. 이 작은 꽃들을 확대경으로 들여다 보면 자연이 얼마나 훌륭한 기하학자이고 디자이너인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아파트 화단이나 거리의 보도 블럭 틈새에서 이 친구들을 볼 수 있다.

오미환 문화부 차장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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