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은 전염병이다. 그것도 '후진국 전염병'으로 꼽힌다. 포천에 이어 강화까지, 올 들어 구제역 발생은 벌써 두 번째.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는 자연스레 '축산후진국 낙인'이 찍히게 됐다. 당장 수출길이 막혀 버렸고, 구제역 청정국 지위회복은 국제사회에서 얘기조차 꺼내기 어렵게 됐다. 그 동안 축산업 선진화를 위해 숱한 정책을 내놓고 많은 비용을 치렀지만, 그런 노력도 이 연쇄적 전염병 때문에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다.
어쩌다 이런 지경이 되었을까. 우선 정부 스스로 책임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선진국 수준의 (공항, 항만 등에서의) 국경 방역망을 갖췄다"고 자평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중국에서 묻혀오는 구제역 바이러스를 걸러내지는 못했다. 정확한 감염경로는 두고 봐야겠지만, 12일 농식품부가 가축질병국에 대한 여행 자제를 강력히 당부한 것은 그 방역망이 뚫렸음을 자인한 것과 다름없어 보인다.
공항을 이용해본 사람이라면 정부 방역망이 얼마나 허술한지 누구나 느낄 것이다. 여행객들이 가축질병 지역을 방문한 경우 신고ㆍ소독을 받도록 하고 있으나, 정작 실적은 거의 없다. 여행객들이 정직하지 못해서일 수도 있지만, 당국도 방역에 적극적이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구제역은 지난해 태국, 베트남 등 아시아에서만 16개국, 세계적으로는 34개국에서 발생했을 정도로 유행했다. 하지만 공항에서 구제역 때문에 '불편'을 경험한 여행객이 과연 있었을까.
축산농가도 할 말은 없어 보인다. 가지 말라는 구제역 발생국가에 가고, 다녀왔으면 철저히 신고ㆍ소독을 하라는데 그것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아무리 좋은 사료를 먹이고 검진을 받는 들, 구제역 하나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고 더구나 강한 전염성으로 인해 이웃 농가까지 치명적 피해를 줄 수 있는데, 과연 우리나라 축산농가들이 이 부분에 얼마나 경각심을 갖고 세심한 신경을 쓰고 있는지는 스스로 자문해 봐야 할 것이다.
국산 한우의 적은 외국산 쇠고기만이 아니다. 아무리 최고 품질의 쇠고기, 돼지고기를 생산해도 구제역 같은 안전문제 하나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된다. 과연 무엇이 축산선진화인지, 정부도 농가도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정민승 경제부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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