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미팅에 나갈 때마다 친구들끼리 농담처럼 건네던 충고 아닌 충고가 있다. "속지말자 화장발, 다시 보자 조명발." 절세가인 사귀기를 인생 최대 목표처럼 여기던 시절에나 애용하던 저급한 우스개가 요즘 새삼 머리 속을 맴돈다. 극장가의 새로운 강자로 자리 잡은 3D(입체)영화들 때문이다.
지난 1일 개봉한 블록버스터 '타이탄'은 호기롭게 3D영화임을 표방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초반 흥행성적은 전세계적으로 3D열풍을 일으킨 '아바타' 개봉 당시가 부럽지 않다. 수입배급사에 따르면 11일까지 180만 관객이 찾았다. 하지만 관객들의 혹평도 뒤따르고 있다. "3D는 3D인데 입체감이 떨어진다" "스크린과 자막의 원근감만 확연하다"는 것이다. 비판과 불만이 나올 만도 하다. '타이탄'은 3D영화이되 3D영화가 아니다. 여느 영화들처럼 2D카메라로 찍어 후반 작업할 때서야 3D로 변환했다. 3D카메라로 촬영해 3D상영을 했던 '아바타'와는 출발부터 다르다. 입체감의 질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수입배급사 내부에서도 "왜 굳이 3D 개봉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의구심 어린 말이 흘러나온다.
지난달 4일에 개봉, 215만 관객을 부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타이탄'과 다르지 않다. 역시나 개봉을 앞두고서야 3D '단장'을 하고 관객을 맞았다. "질감이 '아바타'보다 못하다"는 비판이 심심찮게 터져나왔다.
2D 같은 3D영화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타이탄'만에 그치지 않을 듯하다. 2D로 촬영했으나 3D로 개봉하려는 작품들이 올해 줄을 섰다는 소문이다. 예전에 상영됐던 2D영화들도 3D라는 새 옷을 입고 극장가에 나서고 있다. '토이 스토리' 1,2편이 어린이날 3D로 관객을 새롭게 만난다.
3D를 적극 활용한 마케팅 전략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그 이면에 숨은 상술이 씁쓸하기만 하다. 어느 영화사도 2D영화의 3D변환이라는 영화의 정확한 정체를 관객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진 않는다. 모든 영화들이 3D라는 강렬한 수식어 하나로 뭉뚱그려지며 '아바타'의 후광에 기대고 있다. 딸기 맛 우유를 딸기 과즙이 든 딸기 우유인양 판매하는 것과 비슷하다 비판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여하간 3D영화 개봉이 늘어날수록 올해 관객들 사이에서 이런 말이 유행할 만도 하다. "속지말자 무늬만 3D, 다시 보자 촬영방법." 3D열풍은 어느새 3D광풍이 됐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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