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상원의원 시절인 2005년 러시아 우크라이나 아제르바이잔에서 냉전의 유물인 핵시설을 참관했다. 상원의원으로서 첫 해외방문이었던 이 순방에서 그는 핵물질 관리의 긴박성을 절감했다. 그가 워싱턴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정상들이 참석하는 첫번째 핵안보정상회의를 주재하게 된 것도 그 때의 경험이 바탕이다. 그러나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49개 정상들과 국제기구 대표들이 미국과 똑같은 ‘절박성’을 갖고 있는 지는 알 수 없다. 이는 핵물질 통제라는 거스를 수 없는 대의명분에도 불구하고 이번 회의가 구속력 있는 대응책 없이 두루뭉실한 선언적 성명을 내놓는 선에 그칠 지 모른다는 회의론으로 이어진다. 대표적인 핵물질인 고농축우라늄과 플루토늄을 핵위협으로 보호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이를 어떻게, 어느 정도로 통제할지에 대해서는 각국의 셈법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이다. 핵테세검토보고서(NPR) 발표와 미러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1) 서명으로 성가를 높인 그의 ‘핵 이니셔티브’가 다자무대에서도 통할지 예단할 수 없다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가장 큰 난관은 핵물질에 대한 각국의 시각차이다. 미국을 비롯한 핵클럽과 서방선진국들은 핵물질을 핵테러라는 안보의 범주에서 테러단체 등 ‘비국가행위자’에 흘러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통제’에 중점을 둔다. 그러나 신흥경제권이나 비서방국가들은 미래 대체에너지의 원천이라는 경제적 시각에서 핵물질을 보기 때문에 통제보다는 핵물질의 보다 ‘자유로운 이동’에 시선이 가 있다. 미국이 핵물질에 대해 지나친 통제를 가하려 할 경우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대명제와 충돌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각국의 온도차는 핵테러에 대해 느끼는 위협의 강도가 서로 다른 데서 비롯된다. 비정부 연구단체인 ‘핵위협이니셔티브(NTI)’의 코리 힌더슈타인 연구원은 “불행히도 일부 국가들, 특히 개발도상국들과 인식차가 있다”며 “이들은 자신들이 핵테러의 목표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현실적인 우려가 없다”고 말했다.
이번 회의에서는 ▦핵물질의 불법유통 단속 ▦기존 유엔 결의안 재확인 ▦고농축우라늄과 플루토늄의 통제 기준 설정을 촉구하는 ‘정상선언(코뮤니케)’과 ‘4년 내 통제권 밖에 있는 모든 핵물질의 수거’를 위한 ‘실행계획(워크 플랜)’을 채택할 예정이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이 더 정성을 기울이는 것은 각국이 자발적으로 핵물질 통제에 나서도록 하는 데 있다. 공식문서로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모두 아우를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칠레와 우크라이나, 캐나다의 사례는 오바마 대통령의 ‘개별국가 압박’에 좋은 지렛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칠레는 지난달 보유하고 있던 고농축우라늄 전량(18㎏)을 미국으로 보낸 데 이어 곧 고농축우라늄 포기선언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캐나다와 우크라이나도 미국의 도움을 받아 고농축우라늄을 핵무기로의 전용이 사실상 불가능한 저농축우라늄으로 전환할 방침이다. 오바마의 핵물질 통제 구상은 다지협상보다는 양자외교에서 더 압박의 강도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황유석 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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