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빚내서라도 공천받고… 당선되면 '뇌물수수→구속' 악순환
'돈 선거 NO, 정책 선거 YES!'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6ㆍ2 지방선거를 공명 선거로 치르기 위해 24시간 단속과 홍보 캠페인을 병행하는 전방위 활동을 전개하고 있지만 뿌리깊은 돈 선거의 병폐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각 정당의 공천심사가 본격화하면서 돈 선거가 선거판을 혼탁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12일 현재 총 1,675건의 불법 선거운동을 적발해 이 가운데 148건을 사법 당국에 고발하고 70건은 수사 의뢰, 1,440건은 경고 조치하는 한편, 17건은 이첩했다. 유형별로는 금품 및 음식물 제공이 530건으로 가장 많았고 선심 관광 및 교통 편의 제공 30건이나 됐다. 돈 선거가 여전하다는 얘기다.
행정안전부도 올 들어 7일까지 이번 선거와 관련, 1,387명(1,043건)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적발했다고 밝혔다. 이는 하루 평균 14.3명 꼴로 2006년 5.31 지방선거 당시 같은 기간 적발자보다 12.4%나 늘어났다. 혐의 유형 가운데는 금품 및 향응 수수가 507명(37%)으로 역시 가장 많았다.
'공천=당선'이라는 등식이 성립되는 각 정당의 텃밭에서는 돈으로 공천을 사고파는 이른바 공천 장사가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다.
오근섭 전 경남 양산시장이 지난해 11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비극의 원인도 시장 선거를 치르면서 빌린 60억원 때문인 것으로 밝혀져 파문이 일었다. 특히 2006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전국의 기초단체장 230명 가운데 47%인 108명이 비리 등 혐의로 기소됐으며 이 중 31명이 물러났다. 2004년 공직선거법이 강화했지만 법망의 사각지대에서 엄청난 선거 자금이 음성적으로 지출되면서 선거 빚이 단체장의 뇌물 수수와 구속 등 비리 사슬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지방선거 때 출마했던 기초단체장 후보 A씨는 "각종 선거 경비 명목으로 지구당이 5억원을 요구해 내놓았으며 추가 경비를 합쳐 10억원 이상을 썼다"고 실토했다. 법정 선거 비용 한도액(1억6,000만원)의 5배 이상을 쓴 셈이다.
각 정당에서는 "(공천 헌금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고 정색하고 있지만 공천 헌금은 공공연한 비밀로 통한다. 지역 정치권에서는 "기초ㆍ광역의원은 1억~3억원, 기초단체장은 5억~10억원의 공천 헌금을 내야 보장을 받는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민주당 익산을 지구당의 한 당직자는 익산시장 출마예정자 B씨에게 후보 경선을 위한 조직 관리와 홍보 활동에 필요하다며 5,000만원을 요구했다는 녹취록과 이 당직자가 또 다른 출마예정자에게도 7,000만~8,000만원의 공천 헌금을 요구한 사실이 폭로돼 한동안 인구에 회자됐다.
당직자와 유권자들을 상대로 한 매수 행위도 여전하다.
당직자 23명에게 향응을 제공한 전남 모 군수와 순금 로고 표창장을 주민들에게 전달한 강원 모 군수가 모두 고발됐다. 경북 경산시장은 지난해 5월 도민체전 때 4,000여만원의 경품을 돌리다 적발돼 1심에서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고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전남도의원 예비후보자 C씨는 선거운동 조직책 6명에게 활동비로 100만~400만원씩 모두 1,130만원을 제공하고 사과 60여상자(240만원 상당)를 유권자들에게 돌리다 적발됐으며, 전남 여수시장 예비후보 D씨는 직능단체장 등에게 178만원 상당의 향응을 제공했다가 고발 조치됐다.
경북 경산시장 출마예정자 E씨는 1월 식당에서 유권자 100명에게 120만원 상당의 식사를 제공한 혐의로 기소되자 아예 출마 의사를 접었다. 울산에서는 현직 기초단체장 3명과 시ㆍ구의원 4명이 지역 일간지가 실시한 여론조사와 관련, 금품을 제공한 혐의로 검찰에 무더기 적발되는 등 돈 선거 유형도 다양화하고 있다.
김윤배 경남도선관위 홍보과장은 "돈 선거 풍토를 없애기 위해서는 강력한 단속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유권자가 금품을 배격하는 분위기가 확산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주=최수학기자 shchoi@hk.co.kr
창원=이동렬기자 dylee@hk.co.kr
전준호기자
■ 청도읍·화양읍 주민들 "돈봉투 냄새만 나도 신고할 것"
“돈 선거요? 이제 얘기도 꺼내지 마세요.”
6ㆍ2 지방선거를 50여일 남겨 둔 9일 경북 청도군청 민원실에서 만난 주민 이정식(58)씨는 선거 얘기에 손사래를 쳤다. 청도읍과 화양읍 등 곳곳에서 만난 주민들로부터도 마찬가지 반응이 돌아왔다.
주민 대부분은 최근 각종 선거 때마다 돈 선거의 대명사로 이 지역이 거론되는 것에 노이로제에 가까운 피해 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민선 군수 3명이 공직선거법과 정치자금법 위반 등으로 도중 하차한 데다 2007년 12월 군수 재선거 때는 금품 수수로 주민 2명이 목숨을 끊고 1,400여명이 사법 처리된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이다.
화양읍 농협 앞에서 만난 김모(81) 할아버지는 “2007년 선거 때 금품 수수 의혹을 받던 이웃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태까지 벌어졌다”며 “돈 봉투 냄새를 풍기기만 하면 당장 경찰에 신고해 버릴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미나리로 유명한 청도읍 한재미나리마을의 농민 안국현(48)씨도 “과거 농촌 지역에서는 으레 선거 때면 돈을 주고받는 것이 당연하게 여겼다”며 “지난 잘못을 계기로 주민들 사이에서 돈 선거 근절에 대한 공감대가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지역에서는 이 사건을 계기로 돈 선거가 자취를 감췄다. 12일 군선관위에 따르면 이번 선거에서 현재까지 금품 수수로 적발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또 지난해부터 이달까지 치러진 6개 농협ㆍ축협ㆍ산림조합장 선거에서는 2건의 고발 조치만 있었다. 군선관위 관계자는 “지난 선거에서 홍역을 앓은 만큼 클린 선거 분위기가 뚜렷하다”며 “돈 선거는 물론, 다른 부정 선거 행위도 크게 찾아볼 수 없는 것을 보면 전화위복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주민들도 돈 선거의 악몽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눈을 부릅뜨고 있다. 주민 이모(61)씨는 “돈을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 겁을 내기는 하지만 100% 근절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군민 모두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이번 선거를 깨끗하게 치러 오명을 씻어야 한다”고 말했다.
청도=글ㆍ사진 이현주기자 msyu@hk.co.kr
■ 부산선관위 감시단원 "금품수수 수법 진화… 단속하기 힘들어"
"최근에는 돈 봉투를 직접 주고받는 볼썽사나운 모습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수법은 날로 교묘해지는 것 같다."
주부 이모(45ㆍ여)씨는 부산시선거관리위원회 선거부정감시단의 베테랑 감시원이다. 그는 2006년 5ㆍ31 지방선거와 2007년 17대 대선, 2008년 18대 총선, 지난해 두 차례 재ㆍ보궐선거 등 각종 선거에서 발로 뛰며 10여건의 불법 행위를 적발했다.
그는 "과거 단체 모임이나 행사장 등에서 감시 활동을 하다 보면 카메라를 뺏는 등 물리적 제지를 가하기도 했으나 요즘은 선거감시원 활동에 대해 후보들의 인식이 많이 나아져 그런 일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씨의 활동이 마냥 편해진 것 만은 아니다. 그는 "요즘은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통한 불법 홍보가 늘어나고 금품 수수 방법도 진화하고 있어 애를 먹고 있다"고 토로했다. 확실한 제보를 받지 못하면 적발하기 힘들 정도라는 것이다.
그는 이번 6ㆍ2 지방선거에서 부산시장 후보의 불법 행위를 적발하는 선거감시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감시단이 정식 출범한 2월 이후 평일 오전 9시부터 3시간 가량 선거법 관련 교육을 받고 오후에는 담당 후보의 움직임을 꼼꼼히 챙긴다.
그런데 그에게는 독특한 수칙이 하나 부여돼 있다. 감시 활동을 계속하기 위해 언론에 얼굴과 이름이 나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씨는 "처음에는 단순한 아르바이트로 생각하고 시작했지만 이제는 천직처럼 느껴진다"며 "시선관위 방침에 따라 적발이 아닌 예방에 중점을 두고 감시 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강성명기자 sm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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