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전 총리의 5만달러 수수 의혹 사건 1심 재판에서 검찰은 사실상 완패했다. 이 같은 결말은 재판과정에서 어느 정도 예측 가능했다는 점에서 검찰의 자업자득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무엇보다 수사 자체에 허술한 점이 많았다. 검찰은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의 입에만 전적으로 의존해 한 전 총리를 기소했다. 물론, 뇌물사건의 특성상 금품공여자의 자백 외에는 직접 증거가 있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혐의를 뒷받침하는 제3자의 진술이나 달러 환전내역과 같은 물증도 부족했다. 곽씨가 건넨 자금의 출처도 분명히 밝히지 못했고, 액수도 10만달러에서 3만달러, 다시 5만달러로 진술이 계속 바뀌었다.
애초 검찰 내부에서조차 "곽씨가 법정에서 진술을 다시 뒤집을 수도 있어 혐의 입증이 쉽지 않아보인다"라는 목소리가 나왔던 것도 이 때문이다.
우려는 재판과정에서 그대로 현실이 됐다. 검찰에서 곽씨는 "돈을 직접 건넸다"고 했으나, 공판에서는 "오찬장 의자에 두고 나왔고, 한 전 총리가 이를 봤는지는 모르겠다"고 말을 바꿨다. 검찰은 "보다 진술이 구체화한 것으로, '돈을 줬다'는 일관성은 유지되고 있다"고 강조했지만, 결국 재판부의 권고로 공소장을 변경했다.
정황증거로 제시된 곽씨와 한 전 총리의 친분관계, 골프채 선물 의혹 및 정치후원금 전달사실 등에 대해선 법원은 판단조차 하지 않았다. 곽씨 진술의 신빙성이 무너진 마당에서 정황증거에 대한 검찰의 집착은 헛수고에 그치고 말았다. 검찰 안팎에서 "특별수사의 최정예들이 모인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의 수사결과라고는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공소유지에도 허점이 많았다. 수사팀뿐 아니라 다른 부서의 검사까지 파견받아 총력전을 펼쳤지만, 부실했던 수사의 틈을 메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재판 막판에 한 전 총리가 2008년 곽씨 소유의 제주도 골프콘도를 이용한 사실까지 증거자료로 제출했지만, 다급함의 발로라는 인상만 남겼다.
반대로, 한 전 총리 변호인단의 방어전략이 돋보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검찰 수사단계에서 아예 묵비권을 행사해 검찰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았고, 피고인 신문때도 진술거부권을 행사해 검찰을 당혹케 했다.
모든 진술을 거부해 검찰에 허를 찔릴 일도, 재판부에 유죄 심증을 줄 여지도 없앴다. 법조계의 한 인사는 "정치인 뇌물 사건에서 피고인이 어떻게 방어해야 할지 잘 보여준 사례"라고 평가했다. 검찰은 한 전 총리의 사건을 계기로 이 같은 변호전략이 반복된다면 뇌물사건 수사가 더욱 어려워진다고 우려하고 있다.
김정우 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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