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KCC가 52-47로 앞선 경기 종료 7분14초 전. 허재 KCC 감독이 작전 타임을 요청하고 몇 초 안 흘러 잠실실내체육관을 가득 메운 1만1,735명의 관중들은 떠나갈 듯한 환호성을 질렀다.
'거탑(巨塔)' 하승진(25ㆍ222㎝)이 트레이닝복 상의를 벗고 왼 종아리에 압박 붕대를 칭칭 감은 채 코트에 들어섰다. 삼성과의 6강 플레이오프 1차전에 잠깐 모습을 드러낸 이후 챔피언결정전에서는 첫 출전이었다.
거의 매일 하승진의 출전 여부로 관심을 모았던 챔프전이었기에 두 팀 벤치는 기대와 긴장이 교차됐고, 팬들에겐 최고의 선물이었다. 그리고 하승진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KCC를 벼랑 끝에서 살려냈다. KCC는 9일 열린 2009~10 KCC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7전4선승제) 5차전에서 깜짝 등장한 하승진과 특급 가드 전태풍의 활약을 앞세워 울산 모비스를 69-65로 따돌렸다. 이로써 4차전까지 1승3패로 몰렸던 KCC는 기사회생, 반격의 기회를 마련했다. 특히 하승진이 건재를 확인하며 남은 경기에도 투입될 것으로 보여 챔피언트로피의 향방은 알 수 없게 됐다.
허 감독은 경기 전 "경우에 따라 하승진을 투입하겠다"고 일찌감치 '히든 카드'를 공개했다. 하승진은 선발 출전은 하지 않았지만 KCC는 모처럼 끈끈한 수비를 자랑하며 3쿼터까지 52-42, 10점을 앞선 채 마쳤다. 그러나 KCC는 4쿼터 들어 모비스 던스톤에게 자유투와 골밑슛에 이은 추가 자유투까지 순식간에 5점을 허용하자 허 감독은 마침내 승부수를 띄웠다.
하승진은 투입되자마자 골밑슛을 성공시키며 58-53으로 점수 차를 벌렸다. 다리 부상이 완쾌되지 않아 민첩한 움직임은 보이지 못했지만 하승진이 골밑에 선 것만으로 모비스엔 '위협'이었다. 코트를 휘저었던 모비스 함지훈은 하승진 앞에서 힘을 쓰지 못했고, 파울 3개를 한 뒤 교체됐다.
하승진의 기록은 7분8초간 뛰면서 4점. 그러나 하승진 수비는 사실상 속수무책. 모비스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을 만큼 하승진의 존재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하승진이 결정적인 순간 '조커'로 활약했다면 전태풍은 이날의 히어로였다. 전태풍은 상대 용병마저 현란한 개인기를 앞세워 제치고 들어가기를 수 차례 했고, 결정적인 순간 3점슛도 2개를 꽂아 넣는 등 18점으로 맹활약했다. 특히 승부의 고비가 된 3, 4쿼터에서만 15점을 쏟아 부었다.
KCC 용병 테렌스 레더는 두 팀 합쳐 최다인 25점을 넣고 리바운드 12개를 걷어냈다. 모비스는 4쿼터 2분21초를 남기고 61-62, 1점 차까지 따라붙어 또 다시 역전극을 꿈꿨지만 하승진이라는 장애물에 가로막혔다.
두 팀은 하루 쉰 뒤 11일 오후 3시 같은 장소에서 6차전을 치른다.
성환희 기자 hhs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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