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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에세이] '죽은 일꾼' 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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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에세이] '죽은 일꾼' 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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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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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아이들 이름으로 가입해두었던 보험 두 개를 한꺼번에 해지해버렸다. 아이가 다치거나 소아암, 심장관련 질병 진단을 받았을 경우 진료비와 입원비를 보장해주는 어린이보험이었다. 한 아이당 매달 2만5,000 원씩 20년을 납부하면 된다기에, 그래 까짓 것 내가 담배를 하루 한 갑으로 줄이고 내주지, 호언하면서 사인했던 보험이었다.

알지 못했던 불안 늘어나

보험금 수급자가 아버지 이름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내는 내가 직접 보험회사에 서류를 보내길 원했다. 그거 얼마나 된다고 해지를 해? 식탁에서 나는 아내에게 짜증을 부렸다. 그래도 보험이라는 게 하나 있으면 든든하잖아. 나는 아내가 가정경제를 핑계로 모든 것을 쥐어짠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아내의 생각은 그게 아니었다. 매달 보험회사에서 보내오는 카탈로그를 받아볼 때마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찜찜했다고 했다. 보험이라는 것이 뜻밖의 사고나 손해를 대비하기 위한 제도인데, 아이들의 병을 전제로 왠지 부모를 보호한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란다. 사실 그렇잖아? 아이가 병에 걸렸다는데, 그럼 우리가 집인들 못 팔겠어? 말이 좋아 어린이건강 안심보험이지, 사실은 부모경제 안심보험이지 뭐야. 아내는 단호했다. 듣고 보니 딱히 틀린 말도 아닌 듯 했다. 더불어 보험계약서에 사인을 했을 때, 설계사가 웃으며 했던 말도 떠올랐다. 자, 이제 안심하셔도 됩니다. 2만5,000원으로 이 정도 안심을 얻기도 힘들죠, 하하.

보험이라는 것이 사람들의 불안을 기반으로 그 영토를 하나씩 확장해나간다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일 터. 문제는 불안이 존재한 다음 신규 보험상품이 생기는 것이 아닌, 새로운 보험상품 개발로 인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불안이 하나씩 추가되는, 관계의 역전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죽은 일꾼' 보험이라는 것도 그런 현상 중의 하나일 것이다. 미국에서 실제로 판매되고 있는 이 보험상품은 직원이 사망했을 때 금전적인 보상을 준다. 한데 문제는 수급자가 사망한 직원의 가족이 아닌, 회사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직원이 암으로 죽든, 천식으로 죽든, 회사는 거액의 보험금을 수령하게 된다. 유가족에게는 한 푼도 돌아가지 않는다. 회사는 매년 보험료 대비 수익금이 얼마인지 친절하게 적혀 있는 자료 또한 건네 받게 된다.

이런 류의 보험상품이 변태적인 이유는, 살아 있는 직원보다 죽은 직원이 더 값지다는 사인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안됐습니다, 직원들이 얼마 죽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엔 실적이 좀 저조하군요. 내년을 기약해보지요. 보험중개사들과 회사의 자금담당 상무는 이런 대화를 나누며 악수할지도 모른다.

덕분에 직원들의 불안은 하나 더 추가될 것이다. 회사는 진정 내가 살아 있는 것을 바랄까, 죽기를 바랄까? 극단적인 예인 것 같지만 실제로 미국의 많은 대기업이 이런 보험상품에 가입한다고 한다. 상품명에서 보듯, 한 사람을 단순한 일꾼으로 격하시키는 이 변종보험의 탄생은 자본주의 체제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어쨌든 자본주의 체제에서 최우선 가치는 사람이 아닌 자본이니까.

걱정스러운 의료 민영화 결과

며칠 전, 의료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이 개정안이 걱정스러운 것은 의료민영화로 가는 첫 단추가 될 내용을 다수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민영화가 전면적으로 실시되면 지금의 건강보험 제도는 무력해 질 것이 뻔하다.

그 다음엔? 보험회사들은 열심히 새로운 상품을 쏟아낼 것이며, 우리의 불안 또한 하나 둘 늘어날 것이다. 불안에 감염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은 그저 당장의 안심을 위해 사인을 하는 일뿐이다. 우리 스스로 불안을 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작심하고 돌아볼 시점이다. 스스로 '죽은 일꾼'이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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