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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인터뷰] '만인보' 완간 고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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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인터뷰] '만인보' 완간 고은 시인

입력
2010.04.12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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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이 펼쳐지는 너른 시공간이 모두 소재…쓰고 싶을땐 또 쓸 것"

"오늘날 문학에서 가장 비범한 기획 중 하나다."(미국 계관시인 로버트 하스) "수 천 개의 삶을 시에 새겨 보여주는 에크프라시스(그림을 묘사한 글)."(프랑스 시인 미셸 드기)

고은(77) 시인의 <만인보> 에 바쳐진 찬사들이다. 집필 기간 25년, 4,001편의 시에 5,600여명의 등장 인물.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거대한 규모의 연작시 <만인보> 가 지난 9일 마침내 전30권으로 완간됐다. 이날 프레스센터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고은 시인은 "등에 진 길마를 내려놨다"고 소감을 밝혔다.

하지만 사반세기 만에 필생의 역작을 부려놓은 노시인의 소회가 어찌 그 한 마디로 갈무리될 수 있으랴. 10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그를 다시 만나 심중의 말을 내처 청했다. 그는 <만인보> 완간 기념 심포지엄 참석차 방한했다가 이날 귀국한 프랑스 시인 클로드 무샤르를 배웅하러 경기 안성시 자택을 나서 서울로 온 참이었다.

- <만인보> 완간 작업 때문에 연초에 심한 몸살을 앓았다고 들었다.

"마지막 정본(定本)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제1권부터 꼼꼼히 보고 고쳤다. 시에 언급된 인물, 시대에 대해 교정자들이 지적한 오류, 표현이 부족한 부분 등을 손보다 보니 일이 많았다."

- 이로써 <만인보> 는 완결된 것인가.

"<만인보> 는 본질적으로 끝이 없다. 세상과 약속한 30권을 끝냈으니, 앞으로는 쓰고 싶을 땐 언제든 쓸 것이다. 오늘도 무샤르와 얘기하다가 몇 사람 더 써야겠구나 싶어 집에 가는 대로 메모해두려 한다. 시로 쓸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필요할 때만 소재를 끌어들이는 게 아니고, 산다는 것 자체가 소재의 한가운데를 지나가는 것이다."

- 언젠가 '내가 유일하게 콤플렉스를 느끼는 시인이 고대 그리스의 호메로스'라고 한 적이 했다. 서사시에 대한 갈망으로 이해되는데, <만인보> 로 해소가 된 건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오디세이아'는 서사시의 최초 정전(正典)이자 서사 세계의 시점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언급한 '호메로스 콤플렉스'엔 두 가지 의미가 담겼다. 우선 서사 세계에 투신하는 작가라면 그 근원인 호메로스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이다. 다른 하나는 소월 이래 서정시에 경도된 한국 근대시 100년사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시인이라면 응당 서정에 매혹될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삶이 펼쳐지는 커다란 시공간을 담아낼 서사를 방치하는 건 문학적 직무유기다."

- <만인보> 는 1~3권이 1986년 나온 이후 완간까지 두 차례, 7년의 휴지기가 있었다.

"의식한 건 아니다. <만인보> 를 잠시 제쳐두고 매달린 작업이 많았기 때문이다. 내가 줄곧 <만인보> 에 집중했다면 아마 시들이 80년대의 언어로만 완성됐을 것이다. 시인이 시를 쓸 당시의 환경과 정서에서 완벽히 벗어나기란 힘들다. 휴경기 덕에 80년대뿐 아니라 90년대 전후반, 20세기 말, 21세기 초의 변화한 내 시각이 <만인보> 에 담겨 한층 다채로운 초상이 가능했다고 본다."

- 국내외에서 <만인보> 를 '시인 고은의 대표작'으로 꼽는 경향이 한층 강해질 것 같다.

"내 초기 선시(禪詩)를 먼저 접했던 외국에선 그와 정반대의 스케일을 지닌 <만인보> 가 소개되니까 놀라워한다. 지난해 스웨덴 문화예술위원회에서 펴낸 '금세기 고전' 시리즈에 토마스 만 소설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등과 더불어 <만인보> 가 선정됐다. 이 시리즈 수록작은 스웨덴 전국 중고등학교 교재에 실린다."

멀게는 신라까지 거슬러 올라가 이 땅의 사람들을 하나씩 호명한 <만인보> 전 30권 중 1930~50년대 시인의 고향 사람들을 다룬 초반 아홉 권은 특히 절창으로 꼽힌다. 그런데 시인은 " <만인보> 가 처음 나왔을 땐 별로 인기가 없었다"고 했다. 엄혹했던 유신시절, 민주화에 앞장선 문인단체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창설(1974)을 주도하고, 1980년 신군부 치하에서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연루 혐의로 2년 넘게 옥고를 치른 그가 고향 사람 이야기로 <만인보> 서막을 열자 민중문학 진영에선 "사회 현실에 비춰 너무 편안한 작품"이라는 불만이 나오기도 했다는 것.

하지만 고은 시인은 "시인에게 문학성은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목숨 걸고 지켜야 할 과제"라고 잘라 말했다. "70년대 사회참여와 발언에 적극 나선 것은 내 자연스러운 본성의 발로였지만 시인 입장에선 아쉬움이 없지 않았다. 시 쓰는 공간인 밀실 대신 광장에 서있으니 시를 쓰기 힘들었고, 쓰더라도 응결성이 증발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시를 위한 고립의 시간을 지키기 위해 요즘은 해외 행사 초청도 가급적 거절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떨 땐 한 번 수락하기까지 일곱 번을 거절했다고 한다. 초청자 측에서 볼멘소리도 나오지만 "미안해도 어쩔 수 없다"고 그는 말했다.

- 독일 최고 권위의 '킨들러 문학사전'은 최근 개정판에 새로 한국 작가 30명을 수록했다. 특히 고은 시인에 대해 많은 분량을 할애하며 '동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한국 작가'로 꼽았다.

"독일에서 많은 격려를 받고 있다. 몇 년 전 독일의 어떤 신문은 내 육필 시 원고를 1면에 실었다. 2005년 한국을 주빈국으로 열린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참가, 현지 이탈리아음식점에 갔을 땐 나를 알아본 주인이 종업원 대신 직접 요리를 만들어내와 무척 감동하기도 했다. 독일 정상급 출판사인 주어캄프에선 올해 창립 60주년 기념 도서를 만들면서 내 시집을 넣기로 했다."

- 곧 미국, 이탈리아를 방문한다고 들었다.

"미국 동부 매사추세츠에 있는 대학에서 7년 전부터 간곡하게 초청 의사를 밝혀 더는 거절할 수 없었다. 18일 미국으로 출국, 그 대학과 서부의 UCLA에 각각 들를 계획이다. 이탈리아에선 베네치아 시와 베네치아대학 초청으로 '문화의 십자로'라는 문학행사를 갖는다. 세계 각 지역을 대표하는 작가 4명이 참가하는데 아시아에선 내가, 유럽에선 귄터 그라스가 온다."

고은 시인은 2년 전 한 인터뷰에서 "<만인보> 이후 차기작으로 심청을 소재로 한 형이상학적 장시 '처녀', 동서의 사상과 관념을 통틀어 담는 '운명'을 구상 중"이라고 말했다. 그 계획이 여전히 유효하냐는 질문에 그는 "쓰지 않는 것을 떠벌린 느낌이 들어 조심스럽다"며 "눈 감고 있진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책 읽는 공부만큼은 손에서 놓지 않고 있다"고 했다.

- 주로 어떤 책을 읽나.

"당연히 인문학이다. 아주 환장을 한다.(웃음) 사회 쪽도 읽고, 최근엔 우주과학에 부쩍 관심이 간다. 다시 태어나면 별과 놀고 싶다. 지중해에 관한 페르낭 브로델의 책처럼 긴 분량의 책을 읽는 것이 즐겁다. 동갑내기 친구인 박맹호 민음사 회장이 보내준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 도 무척 반갑다."

- 장서가 얼마쯤 되나.

"셀 수가 없다. 체계적으로 정리가 안돼 있는 책을 찾기 힘들 때도 있다. 내가 잡지에 70년대에 쓴 일기를 연재하다가 중단한 것도 그 다음 일기를 서재에서 찾지 못해서다.(웃음) 누가 도서관을 만들어주면 좋겠다."

- 최근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가 있다면.

"문학의 효용성이다. 시장의 힘이 커지면서 '문학의 죽음'이 다가온다. 남자의 '초콜릿 복근', 여자의 'S라인 몸매' 같은 이미지화 현상은 모두 시장과 결부돼 있다. 이미지는 무책임한 사회적 힘을 발휘한다. 예컨대 광고는 항상 행복하게 웃는 모습만 보여주며 사회를 천박한 개그판으로 만들고 있다. 이런 와중에 문학의 진지성, 고도의 문학성은 허약하고 하품 나오는 것으로 전락한다. 문학의 효용성을 어떻게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 답을 찾긴 쉽지 않다."

그는 어떤 질문에도 열정적으로 답했지만, 노벨문학상과 시국에 대한 질문엔 일절 답하지 않았다. 특히 후자에 대해선 "4대강 문제를 비롯, 일선에 서서 실천할 때만 언어를 동원할 수 있다"는 소신을 밝혔다. 다만 자신이 상임고문을 맡고 있는 한국작가회의가 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시위 불참 확인서' 제출을 요구받았던 일에 대해선 "촌스럽고 바보 같은 짓이고, 정부가 스스로를 모독하는 일"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 외부 일정이 없을 땐 어떻게 지내나.

"오전에 작업하고, 오후엔 책 읽다가 자정쯤 잠든다. 누가 보면 심심하다 할 만큼 단순한 일과이지만 무척 즐겁다. 93년 결혼과 함께 지금의 안성 집에서 살면서 <만인보> 를 시작했다. 아내(이상화 중앙대 교수)는 내 창작 활동을 늘 지지해주고 때론 엄격하게 작품을 심판해준다. 그런 점에서 <만인보> 는 나와 아내가 공동 창작했다고 할 만하다. 영국 코털드 미술대학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딸(25)도 졸업 후 집에 와있어서 집안에 활기가 넘친다."

- 늘 정력적일 수 있는 비결이 궁금하다.

"도통하는 것은 이제 내 목표가 아니다. 한낱 중생, 어리석음을 가진 존재로서 삶의 열기를 그대로 유지하고 싶다. 생은 두렵고, 죽음 역시 그에 못잖게 두렵다. 여기에 초연한 척, 고고한 척하고 싶지 않다.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대결하면서 존재의 청춘을 유지해나갈 것이다."

■ 고은 시인 약력

▲1933년 전북 군산 출생

▲1952년 출가ㆍ법명 일초(一超), 1962년 환속

▲1957년 '불교신문' 초대 주필

▲1958년 '현대시' '현대문학' 통해 등단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초대 대표

▲1980~82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연루 혐의로 투옥

▲1987년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

▲1989년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초대 공동의장

▲1990년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

▲2000년 남북정상회담 수행

▲2005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개막 연설

▲저서 <고은 전집> (전38권), 시집 <백두산> (전7권) <만인보> (전30권) 등 150여 권

▲만해문학상, 대산문학상, 스웨덴 시카다상, 노르웨이 비외르손 훈장 등 수상

▲현 서울대 초빙교수,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이사장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신상순기자 s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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