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 따스한 주말, 겨우내 무거워진 몸도 풀 겸 북한산에 갔다. 예전의 힘든 산행을 떠올리며 먼지 쌓인 등산화도 꺼내 신고 간식도 넉넉히 챙겼다. 그런데 산으로 들어서는 입구부터 전과 다르다. 흙먼지 날리던 길엔 포장도로가 깔리고, 길가엔 새로 심은 나무와 풀들이 가지런하다. 등산로라기보다 산책로라는 말이 어울리는 풍경, 신고 있던 등산화가 무색하다.
하긴 새삼스런 일도 아니다. 동네에 있는 안산 역시 포장길이 놓이고 인공폭포가 생겼다. 시원스레 쏟아지는 폭포를 보고 모르는 이들은 물 많은 산이라 오해하기 십상이나, 사실은 몇 해 전부터 물이 점점 말라서 약수도 전 같지 않다. 기계로 물을 끌어올려 만든 가짜 폭포가 산의 가문 속사정을 가리는 셈이다.
사람 손을 타는 것은 산만이 아니다. 두어 해 전 이사 왔을 때, 집 근처 독립문 역사공원은 아름드리 나무와 오솔길이 어울려 도심에서는 보기 드문 은은한 정취가 있었다. 그러나 1년간의 공원 재조성 사업이 끝난 뒤 모든 것이 변했다. 시원한 그늘과 단풍의 정취를 안겨주던 울창한 수풀이 사라지고, 대신 돌로 만든 커다란 직사각형 연못과 콘크리트 일색의 광장이 나타난 것이다.
그뿐인가. 일제가 조성한 외래종 숲을 한국식 조경으로 바꾼다며 잘 자란 나무들을 뽑아버린 바람에, 지난 겨울 삭풍이 불 때는 피할 데도 없는 삭막한 광장에서 온몸으로 바람을 맞아야 했다. 게다가 공원 가장자리에 조성한 잔디밭을 빼고는 바닥에 온통 포장을 해서, 폭신한 흙 길을 밟는 즐거움도 누릴 수 없게 되었다. 그나마 있는 잔디밭도 어김없이 '들어가지 마시오' 팻말이 붙었으니, 눈은 호사를 할지 몰라도 몸은 고단하기만 하다.
산과 공원에 일부러 포장을 하고 각종 조형물을 설치한 것은, 더 편리하고 더 보기 좋게 꾸미려는 선의의 산물일 것이다. 하지만 선의도 지나치면 피로를 부른다. 더욱 곤란한 것은 자연을 지저분하다 여기고 인공으로 꾸민 것을 아름답게 보는 비틀린 시선이다. 산이든 사람이든 최대한 자연스럽게 놔두는 것이 좋음을 역사는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근대 이후 인간은 기술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가공하는 것이 최선인 줄 알았다. 산을 뚫어 길을 내고 강을 막아 댐을 쌓은 대가로 강이 마르고 초지가 사막이 된 뒤에야, 과학기술에 한계가 있으며 세상에는 인간의 힘으로도 어쩌지 못하는 일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 땅에는 여전히 인공을 신봉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의 무지와 오만 때문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4대강 사업이 시작되기 전과 그 1년 뒤 모습이 잘 보여준다. 하얀 백사장과 초록 습지가 아름답던 낙동강은 잿빛 돌 제방과 콘크리트 천지로 변해 있다. 그렇게 살린 강은 "큰 어항"이 될 거란다. 스스로 흐르던 강이, 돌보는 손 없이는 썩기 마련인 어항이 되는 게 과연 생명을 살리는 일인가?
노자는 <도덕경> 에서 말하기를, "사람들은 사는 일에 열중하지만 하는 일마다 죽는 길로 가니, 지나치게 삶을 좋게 하려 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산을 정원처럼 꾸미고 강을 어항으로 만드는 일은 모두 지나치게 삶을 좋게 하려는 욕심이다. 시민을 위하고 나라를 위해 한다지만, 위한다는 게 오만이요 독선일 수 있음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삶은 결코 좋아질 수 없다. 상선약수(上善若水)라, 가장 아름다운 일은 물처럼 흐르는 것이니 삶도 강도 그저 흐르도록 내버려두라. 도덕경>
김이경 소설가ㆍ독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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