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솔직히 삼류 소설 아닌가?"
경북의 한 기초단체장은 어려운 고백을 했다. "지방선거는 더 이상 선거가 아니니 확 없애버리자"는 것이다. 사실 그의 고백처럼 지방선거는 썩을 대로 썩었다. 후보들 모두 돈을 바르고, 학연 지연으로 가며, 네거티브에 목멘다. 또 정당 공천이 곧 당선인 지역이 많아 중앙에만 줄을 선다. 그러다 보니 정책 대결 같은 것은 한가한 얘기가 됐다. 그런데 유권자들은 이런 한심한 상황을 그냥 받아들이면서 제 잇속만 챙긴다. 하지만 지방자치제도를 지탱하는 기본이 지방선거이고 보면 그냥 넘길 얘기는 절대 아니다. 6ㆍ2지방선거 D_50일을 하루 앞둔 12일부터 4회에 걸쳐 선거 문화를 점검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해 본다.
한국에서 지방선거가 처음 치러진 것은 1995년 6월27일. 15년이라는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지만 끈질기게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돈 선거다. 특히 이번 선거는 선거구 수가 무려 2,296개고, 선출 인원도 사상 최대인 3,990명에 달한다. 유권자 한 명이 뽑아야 할 대상이 8명이나 되면서 돈 선거는 어느 때보다 기승을 부린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11일까지 전국에서 이번 선거 과정에서 적발된 불법 행위는 모두 1,611건. 이 가운데 금품 및 식품 제공, 선심 관광 등 돈 선거 관련이 536건으로 33.3%에 이른다. 2002년 6ㆍ13지방선거와 2006년 5ㆍ31지방선거 당시 돈 선거 적발 건수가 20%대에 머물렀던 것에 비하면 더욱 혼탁해진 것이다.
전남 여수시장 출마예정자는 직능단체장 등에게 178만4,000원 상당의 음식물을 제공했다가 고발됐고 서울 모 구의원은 유권자 165명에게 3만5,000원짜리 굴비세트를 돌렸다가 수사를 받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지역 정치인은 "20억원을 뿌렸다고 자랑처럼 떠들고 다니는 옛 기초단체장이 있는데 이건 해도 너무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네거티브가 판을 치면서 흑색선전과 상호 비방, 고소 고발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달 26일 광주에서는 서모(68)씨 등 15명이 시장출마 예정자에 대해 1980년 5ㆍ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행적을 비난하는 내용의 벽보를 붙이다가 경찰에 적발됐다.
선거철이면 어김없이 정당공천제의 폐해에 대한 비판과 개선의 목소리가 높지만 정작 국회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지역 기반을 갖춘 정당의 경우 지방의원은 2억∼3억원, 기초단체장은 5억∼10억원의 공천 헌금을 바쳐야 한다"는 말은 더 이상 뉴스 축에도 들지도 못한다.
누구보다 이 폐해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현직 단체장들이다. 급기야 3선 연임 제한에 걸려 선거에 출마하지 못하는 전국 기초단체장들이 지난달 초 "기초단체장의 정당공천 폐지"를 외치고 나섰다. 김수영 경남 사천시장은 "정당공천제는 지방분권과 지방자치의 근본 취지를 훼손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런데도 유권자들의 개혁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송건섭 대구대 행정학과 교수는 "이번 선거는 1인 8표제여서 유권자들이 관심을 갖지 않으면 출마자가 누군지도 모른 채 투표할 우려가 크다"며 "금품 살포, 흑색선전, 정당공천 같은 데 억매이지 말고 이웃과의 대화나 신문과 인터넷 등을 통해 출마자들의 정책과 비전을 제대로 살펴 지역 일꾼을 뽑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대구=전준호 기자 jhj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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