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두 개의 '침몰' 사건이 있었다. 3월 26일 밤 서해 백령도 해상에서 천안함이 침몰하면서 46명의 군인들이 실종되었다. 대양해군의 위용은커녕 지휘부는 졸렬한 모습을 노출시켰다. 침몰시각을 수시로 변경하여 발표하였으며, 실종자들이 몰려 있던 함미 부분의 침몰 지역은 어민이 발견했다. 구조대를 희생시키는가 하면, 수색을 돕던 민간 어선이 충돌 사고로 침몰하는 사고가 생겼다.
'한명숙 수사'로 침몰한 검찰
해군의 침몰이 비극적이었다면 검찰의 침몰은 희극적이기도 하다. 4월 9일 검찰은 사법 역사에 남을 참패를 기록했다. 법원은 검찰이 한명숙 전 국무총리를 기소한 사건에서 검찰 주장의 허점을 통렬하게 지적했다. 법조인과 언론인 대부분이 무죄 판결을 예상하고 있던 분위기 속에서, 선고 하루 전 검찰은 다시 새로운 건의 정치자금 관련 수사를 시작했다.
말은 많았지만 천안함 침몰의 원인과 전말은 아직 확정적으로 제시되어 있지 않다. 검찰의 우수한 인력들이 무리를 거듭하는 이유도 석연치 않다. 그런 가운데 이들 사건을 통찰하게 하는 이야기들이 눈길을 끌었다.
하나는 '괴물'에 관한 이야기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칼럼은 2006년 발표된 영화를 탁월하게 재해석했다. 영화가 '진짜 악당'으로 묘사한 것은 한강에 출몰하는 괴물이 아니라 시민들을 호도하고 혼란에 빠뜨리는 국가라는 것이다. 실종자 가족들이 정부와의 소통 부재에 울부짖고 있으며 한국 민주주의는 아직도 정부와 시민 사이의 신뢰관계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동안 가슴을 찡하게 한 통렬한 지적이었다.
드라마 '아이리스'나 영화 '쉬리'도 많이 언급되고 있다. G20 정상회담, 남북정상회담, 김정일 중국 방문 등의 최근 흐름으로 보면, 남북의 지도부에서는 남북간 긴장을 격화시켜서 얻게 되는 이익이 별로 없다. 그런데 천안함이 침몰한 곳이 서해상에서 북한 해안을 봉쇄하듯 금 그어져 있는 북방한계선(NLL) 부근이다. 북의 행위나 남과 북의 상호작용을 배제하는 것도 자연스럽지는 않다. 그러니 드라마나 영화의 스토리가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남북간 또는 각각의 내부에서 벌어지는 미시적 운동들은 분단체제라는 거시적 구조 속에서 전개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나 김정일 위원장은 어쨌든 나름대로 상황을 관리하는 책임이 있다. 그런데 기존의 분단체제에서 보다 큰 이익을 취하는 강경세력은 분단체제의 동요에 위협을 느낀다. 남북관계를 파탄시키려는 세력이 북측일 수도 있지만 남북 내부에도 있을 수 있다. 이것이 '아이리스'나 '쉬리'의 이야기 구조다.
검찰의 한명숙 전 총리 기소도 거시적 합리성이라는 관점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측면이 많다. 결과적으로 검찰은 한 전 총리를 억지로 서울시장 선거라는 '호랑이 등'에 올려 태운 셈이다. 검찰이 오히려 반(反) 이명박 전선의 상징을 만들어 야권이 분열 상태를 봉합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여권 전체에 그다지 이익이 되지 않을 일이다. 결과로 보면 시스템이 정교하게 작동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종교 경전이나 고전이 그러한 것처럼, 좋은 영화나 드라마의 이야기는 일종의 모형 또는 원형을 보여준다. 바울은 과거 이스라엘의 이야기들이 당시에 대한 본보기라고 한 바 있다. 그러니 냉혹한 국가(heavy-handed state)와 분단체제에 관한 여러 이야기도 지금 우리 삶에 대한 예상이 될 수 있다.
비합리적 증오 결말은 뭔가
분단체제와 냉혹한 국가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과학자들이 흔히 가정하는 합리적인 존재가 아닐 수 있다. 이야기에서는 종종 광기로 가득 찬 인간과 사회의 모습이 등장한다. 멜빌의 소설 <모비딕> 에 나오는 에이헙 선장이 그런 경우다. 에이헙은 증오심 때문에 동료의 충고를 무시하고 친구 아들의 구조까지도 외면한다. 그는 오직 흰 고래 모비딕만을 끝까지 추적하여 결투하지만 결국 바다 속으로 끌려 들어가고 배와 선원을 침몰시킨다. 비합리적인 광기와 증오의 결말은 파멸이었다. 모비딕>
이일영 한신대 사회과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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