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살 때 선택의 기준은 다양하다. 관심 있는 주제에 맞춰 고를 수도 있고, 지은이의 명성을 보고 사기도 한다. 신뢰받는 유명 작가가 쓰고 주제가 흥미로운데다 관련 전문가들의 추천사까지 붙어 있는 책이라면, 일단 손길이 갈 만하다.
그런데, 펼쳐보니 오류 투성이에 교열까지 엉망이라면 실망을 넘어 화가 난다. 이번 주 신간 중에 그런 책을 하나 발견했다. 지은이는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꼽히는 세계적 작가이고, 주제는 비판적이면서 신선하고, 뒤표지에 박힌 추천사는 전문가들이 썼다. 좋은 책인 줄 알았는데, 배신감이 들었다.
맞춤법과 띄어쓰기, 인명 표기 등에서 이 책의 하자는 일일이 열거하기가 숨찰 만큼 많다.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를 '그녀'라고 부르고, 화가 파울 클레의 이름을 '클리'라고 쓰고, 한 사람의 이름을 앞 문장과 뒷문장에서 달리 표기하고, '애꾸눈'이 '외꾸눈'이 되고, 개는 '짖'지 않고 '짓'고…. 어처구니가 없다.
원전이 아무리 좋으면 뭐하나. 번역자도, 편집자도 원고를 제대로 살펴보기나 했을까 싶다. 번역자, 출판사, 추천인이 모두 무책임하고 불성실해서 이렇게 책을 내고 이런 책을 추천했겠구나 하는 생각에 그들 전부에 대한 믿음이 깨져버렸다. 이 번역자가 번역한, 또 이 출판사가 펴낸 다른 책들도 한꺼번에 요주의 불량품 후보로 분류했다.
해당 출판사는 급히 책을 펴내다가 실수가 많았다며 부끄럽다고 했다. 초판 1쇄를 2,000부 찍었다고 한다. 리콜 계획을 묻자 분명한 답변을 피했다. 이 책을 사는 것은 소비자로서 손해다. 몇몇 언론 매체가 이 책을 크게 소개했다. 속지 말자.
오미환 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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