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시인은 '두모악 갤러리'의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아 한참이나 묵상을 하였다. 노시인은 마음속의 기도로 제주를 사랑한 '김영갑'이란 영혼을 만나고, 위로하고 있었다. 그 뒤로는 김영갑이 사진으로 남긴 오름의 붉은 노을이 노시인과 사진가의 만남의 배경이 되고 있었다.
사진가 김영갑이 떠난 지 어느새 다섯 해가 다 되어간다. 2005년 연초에 그의 서명이 든 새해 달력을 받았는데, 김영갑은 달력의 반을 다 살아내지 못한 채 투병 중이었던 루게릭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 무렵엔 김영갑과 그의 사진을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이젠 두모악 갤러리는 제주 순례의 성지다.
그는 살아서 제주를 사랑했고 우리는 그가 파노라마 카메라에 담은 순간적인, 찰나의 제주를 사랑한다. 시인은 오래 걷거나 서있기가 불편한 몸으로 전시된 사진을 보고 때로는 읽었다. 사진 한 장 한 장이 세상에서 오직 김영갑만이 본 제주 풍경이라는 것에 시인은 감동으로 한 사진가의 고독하고, 아프고, 슬픈 생을 축복했다.
방명록을 찾아 시(詩)와 같은 기도까지 남겼다. 두모악 갤러리를 빠져나오면서 노시인은 내게 두모악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나는 한라산의 옛 이름이라고, 생전의 김영갑에게서 들었다고 말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두모악 갤러리와 함께 김영갑의 사진은 오래, 아주 오래 사랑을 받을 것이니 그는 참 행복한 사진가다.
정일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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