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법정 다툼에서 완벽한 승리를 거뒀지만 아직 마음을 놓을 수 없다. 검찰이 별건(別件) 수사 논란을 감수하고 강행한 또다른 금품수수 의혹 사건 수사가 그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이 재판에서 무참하게 패배한 만큼 새 사건 수사에 상당한 부담을 안게 될 것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새 사건의 요지는 한 전 총리가 2007년 자신의 국회의원 지역구인 경기 고양시 소재 건설업체 H사로부터 9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자금으로 사용했다는 내용이다. 이미 수사는 상당 수준 진행됐다. 검찰은 최근 관련자 소환 조사에서 9억원의 거래 정황을 포착했고 8일 H사 등 관련 업체들을 압수수색했다. 한 전 총리 측근인 김모씨가 금품거래의 핵심 연결고리로 지목되고 있다. 한 전 총리측도 일부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한 전 총리측 관계자는 “2007년 경선 당시 H사로부터 돈을 받아 선거자금으로 사용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던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 관련 사건과는 상황이 다른 셈이다.
하지만 검찰이 한 전 총리의 혐의를 입증하기까지는 아직 변수가 많다. 가장 큰 변수는 연결고리로 지목된 김씨다. 그가 한 전 총리의 무관함을 주장하면서 혼자 책임을 떠안으려 할 경우 검찰은 난감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실제 한 전 총리측 인사는“주변 사람들이 돈을 마련한 것이고 한 전 총리는 이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밝혔다. 검찰이 추가 물증을 확보하거나 김씨 등에게서 유리한 진술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자칫 검찰의 공세와 한 전 총리의 방어가 팽팽하게 맞서면서 곽 전 사장 사건의 재판(再版)이 될 가능성도 있다.
물론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이번 사안의 핵심은 한 전 총리 처벌이 아니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한 전 총리가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로 꼽히고 있는 상황에서 측근이 불법 선거자금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선거에서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로선 이 선에서 만족할 수 없다. 어찌 보면 검찰은 한 전 총리보다 더 큰 부담을 안고 수사에 임하는 상황이다. 먼저 선고 하루 전 별건 수사에 착수한 데 대한 비판 여론이 만만치 않다. 이런 비판을 감수하고 시작한 사건에서도 한 전 총리를 처벌하지 못한다면 검찰은 감당하기 어려운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곽 전 사장 사건 재판부가 심야조사, 빅딜의혹 등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도 후속 수사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박진석 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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