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2월 어느날 독일 프랑크푸르트 독일에 처음 출장 온 사업가 P씨는 바이어와의 협의를 마치고 호텔로 향했다. 몸도 마음도 피곤해 산시 바삐 호텔의 따뜻한 방에서 잠을 자고 싶었다. 문은 여는 순간, 온기는커녕 차가운 기운이 온몸을 감쌌다. 얇은 잠옷 하나 걸치고 잠을 청하는데 도무지 잠은 오지 않고 이불을 덮었지만 코가 시릴 정도였다. 다음날 독일 현지인에게 전날 밤 얘기를 하니, 두꺼운 스웨터를 껴입고 있던 그가 웃으며 말했다. "옷은 왜 있습니까""
2009년 12월 어느 날 제주도 H호텔. 대학교수 L씨는 세미나를 마치고 개실에 들어왔다. 순간 숨이 확 막혀왔다. 지나친 난방때문이다. 난방온도를 조절하려 해도 안내 매뉴얼을 찾아보기 어렵다. 결국 포기하고 창문을 열어 놓은 채 속옷 차림으로 잠을 청하기로 했다.
물론, 이 두 이야기는 극단적인 사례다. 우리가 맹목적으로 서구 유럽을 따라 갈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근검절약 정신은 마땅히 배워야 할 덕목이라 생각된다. 필자는 기후 변화로 인한 재앙을 막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이런 극단적 사례를 예로 들곤 한다.
흔히 건물을 '생활을 담는 그릇'이라고 한다. 건물에서의 에너지절약은 생활방식을 친환경적으로 바꾸기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소리다. 맥킨지는 건물 에너지효율 향상을 위한 조치들이 탄소 배출 저감을 위한 가장 저렴하고 효과적인 수단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2007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지식 포럼에 참석했던 헬싱키 예술디자인대 총장도 "지구의 운명은 건축디자이너의 손에 달렸다"며 건물의 친환경·녹색화 추진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건물 에너지절감의 방안으로 첫째, 신축할 때 에너지절약 설계기준 강화를 제안한다. 사람이 거주하는 건물은 신축에서 해체까지 최소 30년, 길게는 수백년 동안 에너지를 소비하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므로 설계부터 에너지 효율적인 건물을 짓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독일의 에너지절약형 건물인 '패시브하우스'는 m²당 연간 1.5ℓ 정도의 에너지만 사용하고 있으나 우리나라 아파트는 m²당 연간 12ℓ 정도를 사용하고 있다. 일반 아파트의 유리창을 2중창으로만 해도 약 20%의 에너지 절감효과가 있다.
둘째, 건물 시장에서도 제도적 장치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EU에서는 2009년부터 모든 건물의 신축, 매매, 임대 계약을 할 때 에너지 효율등급 서류를 첨부토록 하고 있다. 건물의 에너지 성능을 시장에서 경제적 가치로 평가받을 수 있게 해 고효율 주택·건물 확산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한다. 친환경 건물에 대한 선호로 임대수입이 늘고 자산가치가 높아져 초기 투지비를 조기에 회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와 같은 제도적 장치를 조속히 도입해야 한다.
셋째. 사회적 관심과 노력 또한 긴요하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병원 호텔 학교 대형마트나 백화점 등이 녹색화 운동을 선도해 나가야 한다. 우리나라 건물부문에서 사용하는 에너지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대중이용 시설의 경우 에너지가격과 에너지절약에 대한 경영층의 관심이 낮아 에너지 낭비 요인이 되고 있다. 심지어 전국 유명 호텔 10군데를 조사한 결과 적정 난방온도를 지키는 곳이 한 곳도 없었을 정도다.
우리 모두 에너지절약을 생활화하는 것이 에너지·기후시대를 살아가는 세계시민으로서의 도덕적 책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장기적이고 일관된 정책과 함께 사회 공동의 실천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이태영 에너지관리공단 이사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