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 대 7. 서울경찰청 3기동단(서울 송파구 문정동)의 성비(性比)다. 의경 1,000명에 여성이 딱 7명이라는 얘기다. 수군수군 선망의 대상인 영양사, 계급이 높아 말 걸기 힘든 행정과장(경감), 몸이 아파야 한두 마디 건넬 의무실장, 묵묵히 밥짓는 식당 아줌마 2명을 빼면 둘이 남는다.
의경들은 30대인 두 여성에게만은 스스럼없이 말을 건넨다. "이모" "누나" "엄마" 등 제 편한 대로 부르고 슬쩍 농을 걸다가도 직속상관인 소대장(경위)과 비슷한 계급의 경찰관이란 사실을 알게 되면 "몰랐지 말입니다"하고 군인 특유의 '각'을 잡는다. 의경들이 "그래도 여자라 편하지 말입니다"라고 추켜세우는 이들은 '여경 인권상담관'이다.
거창한 이름만큼 탄생배경은 자못 엄숙, 난해하다. 경찰은 '신상면담을 통한 자체사고 예방 및 신세대 전ㆍ의경에 맞는 섬세하고 체계적인 상담과 인권교육이 필요하다'는 대의를 걸고 2007년 2월 여경 상담관 10명을 서울경찰청 소속 기동단 다섯 곳에 배치했다.
초창기엔 "여자들이 겪지도 않은 군생활을 알겠어?" "앉아서 한가하게 얘기나 들으며 놀고먹는 '꽃보직'!"이라는 일부의 의문과 비아냥에도 시달리기도 했다. 경찰 내의 '특수임무'를 맡은 이들이 제대로 자리를 잡고 있는 지 살펴봤다.
3기동단의 안현숙(39) 경위와 안영미(31) 경사는 경력4년의 베테랑이다. 각각 교통사고조사계와 지구대에서 근무하던 중 보람된 업무라 여겨 16대 1의 경쟁을 뚫고 현재 업무와 연을 맺었다.
명함부터 남다르다. 경찰마크대신 앙증맞은 꽃무늬에 달랑 직함과 이름, 연락처뿐이다. 안 경위는 "대원들이 어려워해서 일부러 계급을 안 적고 알리지도 않는다. 우리가 경찰인지 모르는 대원들도 더러 있다"고 했다. 제복대신 입은 화사한 치마정장만큼이나 살가운 미소와 인사말로 상대를 맞으니 팍팍한 군생활에 굳은 대원들의 맘도 녹지 않을 수 없겠다. 형형색색 색연필로 적은 글씨가 나붙은 상담실은 옹색했지만 편했다.
누군가의 얘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전문가로부터 대화기법에 대한 집중교육을 한 달간 받았다고는 하나 상대는 그토록 두려워하던 군생활을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 혈기왕성한 20대 남성이다. 둘이 조심스레 꺼내놓은 활약상은 이렇다.
#얼마 전 탈영한 신입대원이 있었다. 7일이나 무소식이던 탈영의경이 처음 전화를 건 상대는 소대장도, 동료도 아닌 안 경사였다. "무슨 일 있으면 꼭 전화하라. 꼭 달려간다"는 상담관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 "겁이 나서 들어오지 못하겠다"고 했다. 무엇보다 먼저 어디 있는지 물었을 법한데 안 경사는 "걱정 마라"고 그를 안심시켰다. 몇 번의 설득 끝에 그가 부대 근처 지하철역에 왔고, 안 경사가 직접 마중을 갔다. 탈영의경은 유치장에 갔지만 안 경위와 안 경사는 틈틈이 면회를 가고 사식도 넣어주었다. 부모에겐 알리지 않았다.
#지방에 있는 부모의 생계가 걱정돼 상담 중에도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던 모 의경. 안 경위는 관할 경찰서와 군청에 전화를 수없이 돌려 의경의 딱한 사정을 전했다. 의경의 부모와도 정기적으로 통화했다. "아들이 군생활을 잘하고 있으니 두 분도 힘을 내시라"고. 덕분에 의경의 아버지는 해당 지역의 공공근로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의경의 낯이 한층 밝아졌다. 지금도 안 경위와 안 경사는 의경의 부모에게 안부를 묻곤 한다.
둘은 주로 신입대원과의 상담에 공을 들인다. 대인관계 건강 가정환경 등을 꼼꼼히 파악해 중대장과 의견을 교환한다. 그때마다 대원들에게 꼭 하는 말이 있다. "옷을 싸서 집으로 보내는 순간부터 2년간은 국가의 아들이야. 엄마한테 전화하지 말고 우리를 엄마, 누나라 여겨."
그래서 눈에 보이는 성과에 얽매이지 않는다. 1인당 500명을 상대해야 하고, 멀리 떨어진 중대는 출장도 가야 하지만 '빨리빨리' 보단 '차근차근' 대원들을 대한다. 온종일 오직 한 명과만 이야기할 수 있어도 그에게 믿음을 줄 수 있다면 아낌없이 시간을 낸다. 관계는 더디게 끓여야 진득하게 눌어붙는 법이다.
예나 지금이나 대원들이 가진 고민의 핵심에는 계급과 위계가 철저한 조직문화와 생활에 대한 적응 문제가 있다는 게 두 상담관의 설명이다. 진로문제도 빠지지 않는다. 다만 여자(이성)문제는 갈수록 성이 개방되면서 주요 고민 항목에서 빠지는 추세라고 했다. 안 경위는 "형제가 없어 애지중지 키우다 보니 단체생활을 어려워하고 기초체력도 많이 떨어져 힘들어하지만 실연은 일상처럼 받아들인다"고 했다. 안 경사는 "시위를 관리하는 의경인 탓에 시민들이 자신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것에도 상처를 입는다"고 귀띔했다.
상담관을 바라보는 의경들의 시선은 어떨까. 연제훈(21) 상경은 "상담관과 비슷?나이에 남자였다면 대하기가 더 어려웠을 텐데 여성이라 누나처럼 긴장을 풀고 편하게 대할 수 있다"고 했다. 이명석(21) 상경은 "상담관이 소대장 계급인데도 군기가 없는 유일한 공간이 상담실"이라며 "간식도 양껏 내줘 배고픔도 채울 수 있는 파라다이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물정 모르는 사람들이 경험도 없이 자리만 보전하고 있다는 무지와 질시 섞인 시선을 보내던 여경 인권상담관 자리는 지방으로까지 확대돼 현재 19명으로 늘었고, 지난해 6,782회의 상담을 했다. 인원 수로 치면 전체 전ㆍ의경 2만4,500명 중 절반 남짓(1만5,908명)이다. 존재가치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이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김주영기자 wil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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