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은 '세계 파킨슨병의 날'이다. 국내 파킨슨병 환자가 7만명일 것으로 추정되지만 치료를 하는 환자는 20%에 불과하다. 그나마 이런저런 이유로 병원 가기를 꺼리다가 증상이 악화된 뒤에야 치료를 시작한다. 전범석 대한파킨슨병 및 이상운동질환학회 회장(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은 "파킨슨병은 치매나 루게릭병과 달리 적절히 치료 받으면 환자가 독립적으로 정상생활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 회장은 "완치법이 없다고 절망한 채 민간요법에 의지하면서 시간을 끌다 증상 조절이 가능한 시기를 놓치는 사람이 많아 아쉽다"고 덧붙였다.
MRI로도 정확한 진단 어려워
파킨슨병은 몸이 떨리고 굳어지며 움직임이 느려지는 증상이 가장 흔하게 나타나고, 걸음걸이가 이상해지면서 수시로 넘어지기도 한다. 아주 서서히 진행하므로 병이 언제 시작됐는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 하지만 쉽게 피곤해지면서 움직임이 둔해지거나, 손 떨림, 팔다리의 불쾌감과 소변장애 등이 생기면 이 병을 의심해 볼 수 있다.
진단은 전적으로 병력과 전문의의 진찰 소견에 의해 이뤄진다. 혈액검사나 방사선검사로는 파킨슨병을 확진할 수 없다. 자기공명영상촬영(MRI)이나 양전자단층촬영(PET) 같은 검사는 파킨슨병 자체를 진단하기보다는 파킨슨병과 혼동되는 다른 질환이 있는지, 2차성 파킨슨병의 원인이 무엇인지 밝히는 데 이용된다.
MRI로 찍어 보면 경미한 뇌 위축이 감지되기도 하지만 그 정도는 아무 증상이 없는 노인들에서도 관찰되기 때문에 별 의미가 없다. 최근 개발된 베타-CIT와 특수 물질을 이용한 PET 검사는 진단에 도움이 되지만 검사비가 비싼 것이 단점이다.
발병 원인은 아직 오리무중
파킨슨병은 실체가 알려진 뒤에도 원인이 밝혀지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1960년 파킨슨병이 중뇌의 흑색질이라 불리는 부위에서 도파민 세포가 죽어가면서 발생하는 신경퇴행성질환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왜 신경세포가 변하는지 확실히 규명되지 않았다. 손영호 세브란스병원 신경과 교수는 "반복적이고 잦은 두부 외상과 이로 인한 뇌출혈이 있은 뒤 뇌혈관성 파킨슨증후군이 생길 수 있지만 경미한 외상으로는 발병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약 때문에 파킨슨병과 유사한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파킨슨병과 유사한 증상을 일으킬 수 있는 약으로는 정신과 치료에 사용하는 몇 가지의 신경안정제와 일부 위장약 등이 있다. 약에 의한 파킨슨병은 도파민을 생성하는 세포가 파괴된 것이 아니고 단지 약으로 인해 도파민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나타나는 증상이므로 약 사용을 중단하면 증상이 없어진다. 따라서 이런 종류의 약을 먹고 있으면 파킨슨병 증상이 나타나는지 주의 깊게 관찰하고, 파킨슨병 환자는 가급적 이러한 약의 복용을 피해야 한다.
파킨슨병은 치료가 아닌 조절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파킨슨병은 불치병으로 취급됐다. 그러다가 1970년대 이후 레보도파 약물 개발 등으로 파킨슨병 치료법이 크게 발전했다. 김종민 분당서울대병원 뇌신경센터 교수는 "파킨슨병 진단을 받으면 사형선고라도 받은 듯 절망하지만 파킨슨병은 퇴행성질환 중에서 치료 효과가 매우 좋은 편이라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다.
도파민 물질의 감소가 원인이니 약물 치료는 부족한 도파민을 보충해 주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치료약은 증상을 완화할 뿐 근본적인 치료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약물 치료를 하는 중에도 도파민 신경세포가 서서히 변한다.
처음 시작한 약물 치료가 어느 시점에 이르면 약효가 떨어지므로 약의 용량에 바꾸거나 다른 약으로 교체해야 한다. 약이 노년층 환자에게 정신 기능을 떨어뜨릴 수 있으므로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최근엔 수술도 많이 시행된다. 가장 흔히 쓰는 수술로는 신경파괴술이다. 국소 마취를 하고 머리에 동전 크기의 구멍을 낸 뒤 이 구멍을 통해 병이 든 위치를 확인한 다음 그 곳에 강한 전류나 열을 가해 파괴하는 방법이다. 이외에 뇌 조직을 파괴하지 않고 전기 자극 장치를 반영구적으로 삽입해 지속적으로 치료 효과를 내는 뇌심부자극술을 시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수술 역시 약과 마찬가지로 병 자체를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니라, 뇌 조직의 생리적 변화를 떨어뜨려 증상을 호전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수술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증상이 다시 나타날 수 있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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