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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이야기] <5> "남들이 안 가본 길 개척" 산악계 등로주의 다시 대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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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이야기] <5> "남들이 안 가본 길 개척" 산악계 등로주의 다시 대두

입력
2010.04.09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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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인 박영석이 최근 안나푸르나(8,091m) 남벽을 알파인 스타일로 오르겠다고 발표할 때 나온 용어가 '등로주의'다. 박영석이 기존 루트 대신 새로운 루트를 개척해 오르겠다고 하자 산악인들은 그가 등로주의를 선택했다고 해석했다.

등로는 말 그대로 산을 오르는 길이다. 거기에 주의가 붙는 게 일반인은 좀 생소하겠지만, 간단히 말하면 남이 다 간 쉬운 루트로 오르는 게 아니라 좀 더 기술이 필요하고 험한 루트로 오르겠다는 등산이념이다. 등로주의가, 산에 오르는 결과보다는 그 과정에 목적을 두고 있다고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등로주의에 입각하면 이미 여러 사람이 이용한, 그래서 비교적 쉬운 루트를 따라 고산을 오르는 것보다, 남이 가지 않은 등로를 따라 낮은 산을 오르는 게 더 가치가 있다.

등로주의를 말할 때 흔히 거론하는 인물이 영국의 앨버트 머메리(1855~1895)다. 등로주의를 머메리즘이라고 하는 것에서 이 이념에 대한 그의 영향력을 알 수 있다. 머메리가 활동했던 19세기 후반은 4,000m급 알프스 봉우리가 모두 초등된 상태였다. 미답봉이 사라졌기 때문에, 어떻게든 정상에만 오르면 된다는 등정주의에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이때 머메리는 '좀 더 어렵고 좀 더 다양한 루트'의 개척을 주창한다. 같은 산을 오르더라도 가급적 어려운 길을 찾아 극한의 등반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안전하고 쉬운 길을 가더라도 정상에만 서면 된다(등정주의)는 당시의 풍조를 반박하는 것이어서 그는 산악계의 이단아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모험과 도전 정신을 바탕으로, 어려운 길을 찾아 산을 오르는 등로주의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공감을 받아 이제 그 가치를 부인하는 산악인은 없다고 보면 된다.

8,000m 급 14좌 완등자를 3명이나 배출한 한국도 이제는 등정주의에서 등로주의로 돌아서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결과를 유난히 중시하고 그것을 위해 물량을 쏟고 속도를 높이는 한국 사회의 특이한 모습이 등산 문화에도 반영돼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박광희 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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