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국민들은 너무 많고 다양한 죽음을 지켜보아야 했다. 김길태의 여중생 살해, 천안함의 침몰, 한준호 준위의 죽음, 최진영의 자살, 금양98호의 침몰로 이어지는 연속적인 뉴스로 인해 국민들은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죽음과 관련하여 국가의 허술하고 무원칙적인 대응이 국민에게 짜증과 답답함을 더해 주고 있다.
일련의 사건에 원칙없는 대응
여중생 살해사건 한 달 전에 발생한 성폭행 사건을 소홀히 처리함으로써 막을 수 있었던 살인을 방치한 결과를 가져왔다. 다시 국민들은 공권력을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국회는 일명 '전자발찌법'을 개정하여 3년 소급적용하기로 의결했다. 범죄억제 효과와 인권 문제를 검토하고 소급입법 금지의 원칙을 위배해도 될 정도의 정당성을 판단한 후의 법률개정인지 미덥지 않다. 혹시 국민들의 분노에 답하는 신중함이 결여된 결정은 아니었을까? 법률개정 내용에 따른 문제도 있지만 원하는 목표인 성범죄 예방을 위해 할 수 있는 방안 중 법안개정이 최선이라는 결론 끝에 국회가 결정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천안함 침몰에 대응하는 정부의 태도는 실망을 넘어 우려와 불안감마저 주고 있다. 워낙 이례적인 사건이니 만큼 초기의 혼선은 그렇다고 치자. 이후에도 원칙 없는 대응은 계속되었다. 사고 이틀 만에 유가족을 참사현장으로 안내한 것이 과연 합당한 조치였을까? 혹시라도 유가족 중 누군가 슬픔을 견디지 못해 혼절하거나 예상치 못한 어떤 행동을 했다면 어찌할 뻔했는가? 비록 유가족이 원했을지라도 망망대해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고현장으로 유가족을 안내한 것은 결코 칭찬 받을 일은 아니다. 또한 규정상 수심40m 이하의 잠수는 금지되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45m까지 내려가 탐색하고 있다는 사고현장 지휘관의 발언은 결국 한 준위의 죽음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일관되지 못한 태도와 원칙의 결여가 정부에 대한 믿음을 떨어뜨리고 있다. 계속된 사건발생 시간 변경, 사건현장을 촬영했던 TOD 동영상의 편집공개와 전부공개 요구, 천안함 절단면 비공개에서 공개로 입장변화 등 줄줄이 이어지는 정부의 의심쩍은 결정이 국민들을 더욱 심란하게 만들고 있다. 급기야 이러한 정부의 투박한 태도들이 사건조사에 민간인의 참여와 미국 전문가 동원, 그리고 대통령이 민군합동조사단 구성에서 민간인이 책임을 맡아야 한다는 주문까지 이어졌다. 국방부가 전면에 나서 있지만 책임은 정부가 져야 하는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간단히 말해서 국민들은 국가를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 동안 국가는 업적지향적이었다. 성과를 보이는 것이 중요하고 안 되면 되게 하라는 말을 금과옥조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안 되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이 상식으로 통해야 한다.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것이 미덕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무리하는 것이 문제의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이제 위기나 최악의 상황에 대한 준비를 할 때가 되었다. 물질적 성과를 이루기 위해 안전을 위한 비용을 불필요하게 생각하고 위험을 감수하는 국가의 격(格)을 넘어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은 불필요하게 보이겠지만 위험과 재난에 대처하는 원칙과 상세한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
뚜렷한 원칙과 매뉴얼 갖춰야
묻고 싶은 것은 정치는 어디로 갔는가 하는 것이다. 현재 모든 대응은 국방부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세종시 문제도 정치문제가 아니고, 4대강 개발도 정치문제가 아니라면, 작금의 문제들 역시도 정치영역의 문제가 아닌 것인가? 그렇다면 정치는 정치인들의 권력투쟁에만 남아 있는 것인지 묻게 된다. 위기 대처와 극복을 위한 국가의 역할이 무엇인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국격을 높이겠다면서 국민들에게 끊임없이 요구하지 말고 국민을 위로하고 한발 앞서 대안을 제시하여 국민들을 안심시킬 수 있는 위기의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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