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이 농협 자회사인 남해화학 인수를 은밀히 추진하던 때, 정대근 당시 농협 회장이 친한 지인에게 관련 미공개 정보를 유출해, 정보를 넘겨받은 한 기업인이 거액의 주식투자 차익을 챙기도록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검찰이 이와 관련한 고소사건을 조사 중이어서 그 동안 무성했던 남해화학 매각추진 의혹 전반으로 수사가 확대될지 주목된다.
5일 검찰과 관련자들에 따르면, 방송계 인사인 P씨는 최근 "남해화학 매각 관련 정보를 제공한 대가로 주식투자 이익의 30%를 주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중견기업 W사 회장 H씨를 사기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P씨는 고소장에서 "2005년 말~2006년 초쯤 H씨가 '정 전 회장에게 접근해 농협 구조조정에 대한 정보를 알아오라'고 수 차례 요구해, 남해화학과 휴켐스 매각이 추진 중임을 확인해 알려줬다"고 밝혔다. 정 전 회장이 자신에게 "남해화학과 휴켐스 주식을 좀 사두라"고 말하길래 "매각대상이냐"고 되묻자 "그렇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P씨는 "H씨가 다시 남해화학과 휴켐스 인수 상대가 박연차 회장인지를 확인해 보라고 해, 정 전 회장한테 물어보니 '어디서 그런 얘기를 들었냐'며 놀라는 것을 보고 맞는 걸로 확신했다"고 말했다.
P씨는 자신이 준 정보를 바탕으로 H씨가 2006년 1~3월 남해화학 주식 30억원어치를 실명 및 차명으로 집중 매입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2008년 3월쯤까지 이 회사 주식을 사고팔아 결과적으로 300억원 이상의 시세차익을 얻은 게 확실하다고 했다. P씨는 H씨가 "실명 및 차명 보유주식을 합하면 개인주주로서는 2대 주주일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직접 들었다고 했다. 실제로 2006년 초 2,700원대 안팎이었던 남해화학 주가는 2008년 3월 2만5,000원대로 10배 가까이 치솟았다.
하지만 H씨는 거액을 벌게 되자 수익분배 약정서를 작성하지 않은 점을 이용, 당초 이득액의 30%를 주겠다던 약속을 뒤집고 수익을 나눠주지 않았다고 P씨는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농협 내부정보 제공, 남동생의 주식정보 분석과 같은 용역을 편취당했다고 강조했다. P씨는 "NH증권의 세종증권 인수 건은 왜 미리 안 알려줬느냐"고 H씨와 유명연예인 S씨가 정 전 회장과 가볍게 나눈 대화 등이 담긴 녹취물을 비롯, 정 전 회장의 미공개 정보 제공 및 H씨와 자신의 동업관계 정황을 뒷받침할 각종 자료를 검찰에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H씨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그 사람(P씨)이 사업 때문에 빚이 많아서 이러나 싶긴 하다"며 "말이 안 되는 주장이며, 그런 적이 없다"고 의혹을 부인했다. 그는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수백억원을 벌었으면 금융당국이 가만 있었겠느냐. 검찰에서 무혐의 결론이 날 것으로 100% 확신한다"고 말했다.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오정돈)는 현재 고소인 주장과 제출자료 등을 토대로 정확한 사실관계를 조사 중이며, 사기 혐의가 성립할지에 대한 법리검토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피해자의 재산 감소가 있기 마련인 일반적인 사기 사건과는 성격이 다른 데다, P씨의 주장이 사실이라 해도 그를 사기죄의 피해자로 볼지, 아니면 미공개 정보 이용 범죄의 공범으로 볼지 논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2008년 말 '세종증권 게이트' 수사 당시 남해화학 매각 추진을 둘러싼 의혹들에 대해선 제대로 수사하지 못했다. 박연차 전 회장은 P씨가 정 전 회장에게서 남해화학 관련 정보를 들었다는 2006년 1월, 정 전 회장에게 20억원을 건넸다가 정 전 회장이 그 해 5월 현대차 뇌물사건으로 구속되자 9월 돌려받았다. 휴켐스의 남해화학 인수 검토 공시가 뜬 2008년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남해화학 인수 청탁 대가일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명확히 규명되지 못했다. 박 전 회장을 포함한 정 전 회장의 측근들이 남해화학 주식거래로 거액을 벌어들였다는 의혹도 여전히 남아 있다. 때문에 남해화학 매각추진 과정 전반으로 수사가 확대될 경우, 전ㆍ현 정권 인사들이 연루된 대형 게이트로 비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정우 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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