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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실존하는 판타지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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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실존하는 판타지 숲

입력
2010.04.09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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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BBC 다큐멘터리 '살아있는 지구-생명의 경연장, 밀림(Jungle)'을 감상하는 학생들의 태도가 여느 해에 비해 훨씬 진지했다. 화면에 장엄하게 펼쳐진 정글의 모습이 바로 영화 '아바타'의 배경과 꼭 닮아 있던 것이다.

높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웅장한 나무(사실 나무는 지구상에서 몸집이 가장 큰 생물종이다), 줄기를 따라 융단처럼 깔린 푸른 이끼와 고사리, 그리고 늘어진 착생식물(기생식물)들, 신비로운 빛을 발하는 버섯들, 서로 얽혀 교감하는 뿌리들, 화려한 날개 짓의 새, 영화 속 신비의 숲이 지구 상에 현존하는 밀림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었던 것이다.

입체 안경을 통해 평면 사진 속의 영상을 입체로 본 것은 지금으로부터 20년도 더 지난 대학시절 '항공측량학' 수업시간을 통해서 였다. '3D'라는 용어는 아니었지만 입체 사진은 상당히 오래 전부터 사용되던 기술의 하나였다. 사실 우리가 영화 아바타를 보고 놀라워 하는 것은 3D라는 영화적 기술이 아니라 그 영화가 그려내고 있는 황홀한 배경들이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었던 지구의 경이로운 숲을 영화를 통해 새롭게 발견하는 흥분이었다.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수많은 판타지들을 분석해보면 '허구'보다 더 중요한 '사실'들을 결코 간과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벅스 라이프(A Bug's Life)', '니모를 찾아서' 등 정교한 그림으로 수많은 사랑을 받았던 애니메이션 영화사 '픽사(PIXAR)'의 제작진이 밝히는 가장 중요한 작업 중의 하나는 전문가에 의한 철저한 고증 작업이라 했다.

이야기(스토리) 이전에 주인공 생물은 물론이고 배경을 이루는 나뭇잎 하나, 수초 하나에도 고증을 통한 거의 완벽에 가까운 재현은 허구인 이야기를 전혀 허구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하는 장치가 된다. 우리 모두는 개미가 말을 하고 물고기가 말을 한다고 믿지는 않지만, '만약 개미가 말을 한다면 바로 저렇게, 만약 물고기가 말을 한다면 바로 저렇게' 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결국 아주 조금의 허구가 거대한 사실을 토대로 펼쳐지면서 완전한 공감과 새삼스러운 감동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우리 문화의 빈곤감의 하나는 기술의 개발에 못 미치는 콘텐츠의 부재라고 한다. 그 특별한 콘텐츠가 혹시 우리의 상상만으로 창조된다고 믿는가. 그러나 사실에 바탕을 두지 않는 상상은 추상적이다. 추상적인 이야기는 감동이 약하다.

숲은 어떤가. 숲에서 일어나는 일들이야말로 우리가 꿈꾸는 판타지가 아닐 수 없다. 숲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할 뿐 아니라 생명 활동의 엄격한 '사실'의 보고이다. 우리가 숲을 단순히 자연이라는 감상적 대상으로만 여기거나 건강이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대상으로 바라보는 동안 우리는 거대한 상상력의 대상을 잊고 있었다. 숲의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할 필요가 있다. 숲에서 탐지한 과학적 사실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창조적 작업을 가능하게 한다.

이제 막 숲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낙엽 더미에서 꽃잎이 피어나고, 마른 가지에서 잎이 솟아나고, 흙 속에서 애벌레가 기어 나오고, 알에서 올챙이가 깨어난다. 마술사의 손끝에서 꽃잎이 피어나듯 빈 가지 끝에서 아름다운 꽃잎이 터져 나온다. 하늘을 향해 뻗어가는 나뭇가지는 '잭의 콩나무'다. 우리가 상상하는 온갖 형상의 생물들이 또한 숲에서 깨어날 것이다.

그런데, 잠깐, 당신이 지금 보고 있는 숲을 그대로 믿지 마시라(영화 '그림 형제-마르바덴 숲의 전설' 중).

차윤정 생태전문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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