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신흥 명문 사립고에서 담임교사들이 학생들에게 학업이나 진로 관련 상담을 해주는 대가로 돈을 받고 있어 물의를 빚고 있다. 학교측은 담임 교사의 상담을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으로 운영, 신청자에 한해 수강료를 받고 있다고 설명하지만, 학부모들은 "담임교사들의 당연한 몫인 학업 상담까지 유료화해야 하느냐"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논란이 불거지자 서울시교육청도 7일 진상조사에 나섰다.
서울 양천구 K고교는 지난해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의 하나로 '담임 멘토링'을 개설해 신청 학생을 대상으로 운영해오고 있다. 이 학교가 1월말 발송한 가정통신문에는 담임 멘토링은 '학생 개개인의 학습 계획 등을 지도하기 위한 담임교사와 학생 간 일대일 지도 프로그램'이라고 소개돼 있다.
이 프로그램은 한달 단위로 학생들의 신청을 받아 진행되는데, 한달 수강료는 올해 2월까지는 2만 8,000원이었다가 3월부터는 4만 2,000원으로 올랐다. 학생들은 주1회 30분 정도 담임 교사를 만나 상담을 받는다. 이 학교의 한 교사는 "하루 일과 뒤 저녁 6시부터 8~9시까지 두 세시간 정도 학생들을 개별 면담하고 있다"며 "학생별로 학습계획을 세워주고 어느 정도 실천하고 있는지 등을 살펴본다"고 말했다. 학교측은 "담임 교사들이 저녁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서 학생들을 상담해주기 때문에 수강료를 받도록 한 것"이라며 "원치 않는 학생들은 수강신청을 하지 않으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역차별을 받을지 모른다는 걱정에 울며 겨자 먹기로 신청할 수밖에 없다는 반응이다. 한 학부모는 "내 아이가 담임 관심을 못 받으면 어쩌나 싶어서 어쩔 수 없이 했다"며 "우리 아이 반의 경우 36명 중 34명이 신청했는데, 사실상 반강제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 학부모는 "담임 교사가 학생들의 학업상담까지 돈을 받고 한다면 대체 사제지간의 정이란 게 있을 수 있겠냐"며 씁쓸해했다.
상담 내용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도 적지 않다. 2년째 멘토링을 수강하고 있다는 3학년 A군은 "그냥 교무실에 가서 담임과 마주 앉아 '공부 잘 되냐'는 질문을 듣던 예전 상담과 다를 게 없지만 담임이 신청하라고 해서 그냥 했다'며 "뒤처진 과목에 대해 따로 수업을 해주는 것도 아니어서 효과도 거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학교는 담임 멘토링 외에 학생들이 부족한 과목을 신청해서 방과 후에 수업을 듣는 교과 멘토링을 따로 운영하고 있다.
학부모들의 불만이 제기되자 서울시교육청도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시교육청 최형철 장학관은 "상담 내용과 방식 등 자료를 토대로 일반 상담과 비교해 차별성이 있는지 조사 중"이라며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학생들에게 수강료를 반환하게 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이 학교 교감은 "교육청으로부터 지시가 내려오면 그에 맞게 따르겠다"고 말했다. 입시전문업체 하늘교육에 따르면, 이 학교는 2010학년도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합격생 배출 순위가 서울지역 일반고교 166곳 중 상위 10위 안에 들었다.
이태무 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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