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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천안함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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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천안함 딜레마

입력
2010.04.09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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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해난 사고 때마다 현장취재를 갔다. 해군 소해함(Mine Sweeper) 항해사와 포술장 등으로 근무한 경험 때문이다. 부사관으로 장기 복무하는 옛 부하의 도움을 받은 적도 있다. 1981년 진해만 수로에서 고속여객선 2척이 충돌해 침몰했을 때, 수로 길목의 해군 검문소에서 레이더 추적 기록을 얻어보고 사고 원인을 특종했다. 마주 오던 여객선들이 충돌예방규칙을 어기고 같은 쪽으로 피하는 바람에 일어난 어이없는 사고였다.

주변적 의혹에 몰두한 사회

천안함이 침몰한 날, TV 뉴스특보를 보다가 밤 12시에 신문사로 나갔다. 오래 전 동해에서 북한 해안포에 격침된 당포함을 먼저 떠올렸다. 서둘러 사설을 썼으나 신문에 내지 못했다. 마감 시각도 촉박했지만, 침몰 원인과 북한 관련 여부 등이 오리무중이라 방향을 잡을 수 없었다.

다만, 내 소견으로는 기뢰 폭발인 듯 했다. 몸이 공중에 떴다는 승조원 증언을 주목했다. 기뢰가 함선 아래서 폭발하면 강한 충격파로 배가 위로 솟는 바람에 머리를 천장에 부딪칠 위험이 크다. 이 때문에 기뢰 탐색함은 지휘소 함교 지붕이 없거나, 철제가 아닌 캔버스나 합판으로 만든다.

천안함이 폭발과 함께 두 동강난 사실이 드러나면서, 음향이나 자기 감응식 해저 기뢰(Bottom Mine)에 의한 전형적인 수중 폭발로 보았다. 해저의 닻에 묶어 수면 가까이 띄워두는 계류 기뢰(Moored Mine)는 대개 접촉식이다. 주로 뱃머리에 부딪쳐 폭발하고 큰 손상을 주지만, 수중 폭발처럼 대형 함선을 두 동강 내지는 않는다. 통상적인 어뢰도 마찬가지다.

30여 년 전의 짧은 경험과 지식을 자신하지 않는다. 또 설령 북한 잠수정 등이 천안함 항로에 몰래 기뢰를 부설하거나 어뢰를 쏘고 달아 났더라도, 침투 흔적과 파편 등 증거를 확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운 좋게 파편을 찾아도 만든 나라를 알기 어렵고, 북한과 연결 짓기도 쉽지 않다. 예까지만 생각해도 우리 사회 전체가 심각한 딜레마에 처할 것이 염려됐다.

그러나 정작 사회와 언론의 관심은 다른 데 있는 듯하다. 군과 정부의 대응이 엉망이라고 마구잡이로 욕하고, 온갖 근거 없는 의혹에 몰두한다. 실종자 가족의 비통함을 드라마처럼 부각시키는 선정성도 여전했다. 한주호 준위의 살신성인은 그 천박한 위선을 통렬하게 일깨웠다.

특히 공영방송을 비롯한 언론이 황당한 억측을 그대로 옮기는 행태는 한심했다. 선박, 무기 등 분야가 다른 전문가의 엇갈린 견해를 그냥 늘어놓아 혼란을 더했다. 언론이 이해하지 못하면 모두 의혹이라고 떠드는 것은 공적 보도가 아니다.

물론 군과 정부의 허물도 크다. 초기 대응과 설명에 어설픈 구석이 많다. 그러나 정략에 얽매인 정치는 그렇다 치더라도, 국민의 알 권리를 앞세운 언론이 본질을 벗어난 주변적 의혹에 매달려 혼란을 부추긴 것은 개탄스럽다. 정부가 공영방송을 장악했다더니 겨우 이 꼴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사태 발생시각, 위치 등의 논란은 별 쓸모 없다. 무슨'비상작전' 은폐 의혹을 끈질기게 제기하지만, 천안함이 전투배치도 없었던 사실이 확인된 마당에는 악의적 음해일 뿐이다. 보수든 진보든 사태 자체의 딜레마를 어찌 풀어갈지 정직하게 고민해야 한다.

딜레마 해법, 정직한 고민을

일부에서 고민을 덜어주는 역사적 사례라고 소개한 1946년의 코푸(Corfu) 수로 사건은 실제로는 딜레마를 일깨워 준다. 군함의 무해통항권을 인정한 국제사법재판소의 첫 판결로 교과서에 나오는 이 사건에서 영국은 알바니아 해역에서 군함 2척이 기뢰와 충돌해 승조원 40여명이 사망하는 큰 피해를 입었다. 영국은 피격 함정에 남은 파편과 사고 해역에서 수거한 기뢰가 같은 독일제라며 알바니아의 배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국제사법재판소는 알바니아가 기뢰를 부설한 증거를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연안국으로서 기뢰 위험을 알리지 않은 책임을 인정했을 뿐이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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