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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김예슬씨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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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김예슬씨에게

입력
2010.04.09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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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과 대기업의 하청업체가 된 대학은 그만 다니겠다며 예슬씨가 학교에 붙였다는 대자보를 봤습니다. "생각한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하고 행동한 대로 살아내겠다"는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럼요. 그게 공부하는 사람이 사는 방법이지요. 그런데 제2, 제3의 예슬씨가 나타나면서 예슬씨가 교육비판의 선구자로 찬사를 받는 것은 걱정이 됩니다.

사람이 지나치게 영웅대접을 받는 것은 늙어서 세상을 떠날 때도 바람직하지 않은데-법정 스님을 불세출의 성자로 표현하는 요즘의 보도 추세가 그렇습니다-불과 스물 몇에 영웅이 되어버린다면 얼마나 불편할까요. 또래 자녀를 둔 어머니로서 학교로 돌아가는 데 족쇄가 될까 걱정도 듭니다.

대자보로 통박한 우리 대학교육

한국인의 평균 학력은 고졸인데 조만간 대학 중퇴로 올라갈 것입니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지식이 점점 높아지는 데다 한국에서는 대학 가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으니까요.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면서 좀더 나이 들어서 사회로 나오게 하려는 균형감각이 작동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예슬씨가 이 학교는 그만둔다고 하더라도 대학 교육은 받아야 하는 사회가 오고 있습니다. 어떤 삶을 선택하든 어느 정도의 경쟁은 사회생활에서 불가피한 요소이고요.

한국에서 교육이 경쟁을 부추기긴 하지만 경쟁의 정도를 결정하는 것은 자신입니다. 학교가 공부를 점수로 환산하고 순위로 매기지만 그 때문에 친구를 사귀지 못하고 경쟁에만 몰두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고등학교는 대학에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친구들을 사귀기 위해, 대학은 취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체적인 쓸모가 없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다니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쓸모가 없었던 시간들이야말로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는 아주 나중에야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한국의 교육은 경쟁적이어서가 아니라 경쟁이 공정하지 않아서 문제입니다. 대학입학 수시는 올해 대학교육협의회가 5회 응시로 제한했지만 과거에는 무제한이었지요. 정시는 세 군데만 칠 수 있습니다. 부유층 자녀들이나 학교마다 몇 만원씩 하는 전형료를 부담 없이 낼 수 있겠지요. 그런데도 대학은 수시 비중을 자꾸 늘리고 있습니다.

외국인 특례니 국제학부 전형이니 해서 부모 덕에 영어가 유창한 학생들에게는 명문대를 가는 것이 더 쉽습니다. 질 높은 공부를 시킨다고 학비가 비싼 자율형, 자립형 사립고만 늘리고 있습니다. 20%는 빈곤층을 의무적으로 뽑으라고 하지만 이거야말로 위선적인 포퓰리즘입니다.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 계층의 인구를 모두 합쳐도 10%가 되지 않습니다. 자사고를 늘리면서 제 동네에 있는 가까운 고등학교를 두고 멀리 다녀야 하는 학생들이 늘어났습니다. 버스를 타면 다달이 교통비만 3만원이 넘습니다. 이래 저래 없는 사람만 더 힘든 교육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사교육을 잡으면 교육이 바로 선다고 생각합니다. 공교육은 질이 낮아서 문제이지 사교육비가 많이 들게 해서가 아닙니다. 고등학교 공부만 열심히 따라가도 외국인과 의사 소통도 되고 궁금한 것은 교사한테 다 해답을 구할 수 있다면 무엇이 문제입니까. 그렇게 교사의 수준을 높이고 제대로 된 커리큘럼을 짜야 합니다.

사실은 초ㆍ중ㆍ고 교육이 더 문제

그런데 공교육을 보지 않고 사교육을 보니 방과후 수업으로 학교 과외를 시키고 교육방송(EBS)에서 수능시험을 내는 게 해결책이 됩니다. 청소년이 하루에 여덟 아홉시간을 공부해야 한다면 아동학대입니다. 교사들은 그렇게 혹사를 하면 효율이 오르겠습니까? 교육방송도 문제집을 사야 하는 사교육입니다. 초 중 고등학교 교육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데 대학입시와 대학교육에 과도한 관심이 쏠려 있습니다. 예슬씨의 대자보도 그래서 더욱 관심을 끌었겠지요.

이제 예슬씨들의 대자보는 그만 보고 초 중 고등학교 교육을 들여다봅시다. 대신 예슬씨의 대자보에서 학부모들은 초 중 고등학교에서 지나치게 경쟁에 몰두하면 지친다는 평범한 진리를 보길 바랍니다. 예슬씨는 대중의 압력보다 개인의 의견이 가장 소중하기에 대자보를 지키든 번복하든 그건 예슬씨의 권리라는 점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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