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번영을 유지하려면 미래의 '경제일꾼' 인구가 줄어들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아기를 낳아야 한다'는 주장과 정책이 힘을 더해가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엊그제 발표한 우리나라의 노령화 전망도 이 같은 맥락에서 풀이되고 있다.
전망에 따르면 지금 청년들이 환갑을 맞는 2050년이면 우리나라는 '노인의 나라'가 된다. 2000년 현재 전 인구 대비 2.3%였던 65세 이상 노인의 비중이 2050년엔 무려 34.4%, 인구 10명 당 3.5명이 된다니, 낮에 지하철이라도 타면 온통 노인이 가득한 '기묘한 풍경'이 펼쳐질 것이다.
더욱 걱정스러운 건 저출산 때문에 경제활동의 주축인 20~49세 인구가 급감한다는 얘기다. 전망대로라면 해당인구는 2000년 현재 2,367만명에서 2050년엔 1,343만명, 인구 10명 당 3명으로 줄어든다. 경제의 활력이 크게 떨어지는 건 물론이고, 급증한 노인인구를 부양하기조차 어려운 한계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분석된다.
위기감은 출산장려정책에 힘을 실어주는 쪽으로 전개되고 있다. 앞으로도 경제의 활력을 유지하고, 무리 없이 노인인구를 부양하려면 미래의 '경제일꾼'인 아기를 많이 낳아야 한다는 주장, 요컨데 '번영을 위한 다산(多産)'의 논리가 그것이다.
그런데, 번영을 위해 아기를 많이 낳아야만 한다는 이 논리, 괜찮은 걸까?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나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므로 식량위기는 필연적'이라던 토마스 멜서스(1766~1834) 당시, 세계인구는 약 8억명이었다. 그러나 멜서스의 주장은 기술의 발달로 한 때 식량수확량의 증가 속도가 인구 증가 속도를 추월하면서 힘을 잃었고, 이후 세계인구는 추세변동 없이 증가해 현재 70억명에 이르게 됐다.
1972년 '로마클럽'은 '성장의 한계(The Limits to Growth)'라는 보고서를 통해 세계 인구가 2%대로만 꾸준히 늘어나도 멀지 않은 장래에 지구상에서 생산되는 식량으로는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없는 한계상황이 불가피하다고 다시 한 번 환기했다. 또 석유 같은 재생 불가능한 자원의 사정은 더욱 나빠서 현재의 경제성장 추세가 변하지 않는 한 앞으로 100년 안에 세계는 성장의 한계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런 식의 경고는 결과적으로 번영과 경제성장을 겨냥한 각 국민국가 간의 현실적 경쟁 속에서 다시 한 번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이제 또 다시 우리나라를 포함한 각국이 암암리에 '번영을 위한 다산'을 장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그리스 신화 속의 에리직톤은 그 오만과 불경으로 신의 미움을 받아 아무리 먹어도 허기를 채울 수 없는 저주를 받았다. 전 재산을 먹는데 쓰고도 모자라 딸까지 팔았지만, 에리직톤의 끝없는 배고픔은 자신의 몸을 다 뜯어먹을 때까지 계속됐다고 한다.
번영을 위해 최소한 현재의 인구가 유지돼야 하고, 더욱 번영하기 위해선 인구가 오히려 늘어나야 한다는 요즘의 '인구허기증'은 에리직톤의 알레고리에 빠진 듯한 인류문명의 현주소를 환기한다.
한계가 뻔한 지구의 인구부양력을 생각하면 마땅히 억제돼야 할 인구가, 국가 단위의 경쟁과 경제논리 때문에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게 된 희한한 현실. 인구문제는 이제 문명의 본질적 딜레마를 향해 다가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장인철 생활과학부장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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