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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세종대왕 동상과 소프트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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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세종대왕 동상과 소프트 서울

입력
2010.04.09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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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방돔 광장에 서 있던 루이 14세의 기마상(像)은 프랑스 혁명 때 파괴된다. 이 빈 자리에 나폴레옹은 자신의 동상을 세웠다. 나폴레옹이 실각하자 그의 동상은 앙리 4세상으로 대체된다. 나폴레옹이 다시 집권하자 이번에는 앙리 4세상이 철거된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설치된 나폴레옹상은 파리 코뮌 당시 또 파괴되었다가, 1874년 복원되어 오늘에 이른다.

동상 한 개를 가만두지 못하고 왜 이렇게 파괴와 복원을 일삼았을까? 서구인들에게 동상은 미술 작품이라기보다는 체제를 상징하는 이념의 표상이다.

광화문 광장에 세워진 세종대왕상을 많은 사람들이 미술작품과 혼동하고 있다. 동상은 국가 정체성 홍보를 위한 기념비다. 미술이론가 마일즈는 동상이 "군대나 경찰에 비해 적은 비용으로 확실하게 사회를 통제한다"고 했다.

어느 신문 사설은 세종대왕상을 왜 세웠는지 잘 설명하고 있다. "펜이 검보다 강하듯 동상은 어떤 무기보다 강할 수 있다. 세종이나 충무공 뿐만이 아니다. 안중근, 이승만, 김 구, 박정희도 보다 번듯한 동상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영웅들의 동상이 늘어나는 만큼 한국 사회는 강력한 정신적 무기를 갖게 되는 것이다."

광화문 광장을 지날 때마다 그 옛날 국기 하강식 때 길을 멈추고 충성을 다짐하던 일이 떠오른다. 애국심과 존경심이 마음 속에서 자발적으로 생기지 않으면 죄를 짓게 될 것 같은 분위기가 이 광장을 채우고 있다.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 동상은 국기에 대한 맹세와 다름없는 방식으로 애국심을 강요한다.

서울시는 광화문 광장에 더 많은 동상을 세우고 싶을지도 모른다. 왜 김유신이나 을지문덕은 안 될 것인가? 안중근도 세우고 태극기도 크게 하나 만들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동상은 18세기, 서구 제국주의 팽창시기에 유행했다가 쇠락해 버린 과거의 낡은 유물일 뿐이다. 스탈린이나 레닌의 커다란 동상을 제작했던 사회주의국가들조차 지금은 엄청나게 큰 영웅들의 동상을 수도의 대표적인 광장에 세우지 않는다.

2010년은 서울시가 '세계 디자인 수도'가 되는 해다. 서울은 건설, 산업, 기능과 효율 중심의 하드 시티를 문화 중심의 소프트 시티로 바꾸기 위한 계획들을 세우고 홍보해 왔다. 하지만 세종대왕상은 서울이 표방하는 소프트 개념과는 반대로 내용과 형식이 모두 딱딱하다. 애국적 서사를 다룬 내용, 압도적인 크기, 그 위에 칠해진 금색, 직선으로 구성된 형식 모두가 경성(硬性)이다. 세종대왕상은 전후좌우나 위쪽 어디에서 보아도 사각형이다. 동세(動勢)가 거의 없는 직선적 구성, 획일성, 뻣뻣함, 단조로움, 무거움, 답답함이 이 동상을 제작한 서울시의 경직된 문화의식을 가늠케 한다.

게다가 세종대왕상은 지나치게 크다. 4.2m 기단 위에 세워진 높이 6.2m, 폭 4.3m에 무게 20톤의 위세가 광화문은 물론 경복궁, 더 나아가 뒤의 인왕산까지 가린다. 광장을 순환하는 공간의 흐름과 시각적, 정신적 자유로움을 단숨에 차단한다. 서울시는 도심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비우는 디자인 서울'을 표방하고 있지만 공공미술의 문제점으로 숱하게 지적되어 온 채움에 대한 강박증을 이토록 적나라하게 드러낸 경우도 없다.

광화문 광장은 동상이 없거나 작을 때 오히려 인왕산과 경복궁, 광화문이 어우러진 조화가 품위를 느낄 수 있다. 그것이 한국적 정신과 아름다움을 자연스럽게 알리고 더 감동을 준다. 디자인 서울이 표방하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문화에 맥이 닿아 있는 품격 있는 문화도시"의 모습이자 '비우는 디자인 서울', '소프트 서울'의 모습이기도 하다.

전강옥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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