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in), 인, 인, 인…" 세계적인 발레 트레이너 표트르 나델리(64)는 공연에서 주로 하체 바깥쪽 근육을 사용하는 국립발레단원들에게 안쪽 근육을 긴장시키도록 주문했다. 단원들은 온몸이 후들거리고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지만, 나델리의 노래하듯 흥겨운 지도에 얼굴에는 내내 웃음꽃이 피었다. 엄격하고 조금은 경직된 러시아 트레이너에게 익숙했던 단원들에게, 폴란드 출신으로 유럽을 주 근거지로 하는 나델리의 수업 방식은 생소하지만 흥미로운 것이었다.
5일 열린 국립발레단 클래스(기본 동작을 훈련하는 수업)의 한 장면이다. 30여년 간 세계 유수의 발레단에서 트레이너로 활약해온 나델리는 예순을 넘긴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유연하게 시범을 보였다. 한국 방문이 처음이라는 그는 "세계 각지에서 한국 무용수를 지도해오면서 꼭 한국에 오고 싶었다. 마침 '홍등'과 '신데렐라' 등의 의상을 만든 제롬 캐플랑이 한국 발레를 극찬하며 국립발레단을 소개해줘 기회를 얻었다"고 말했다.
나델리는 1971년 무용수로 데뷔한 지 4년도 채 안돼 트레이너를 병행했다. 프랑스의 대표적 안무가였던 모리스 베자르가 자신의 작품 '볼레로' 기획을 그에게 맡긴 것이 시작이었다. 나델리는 "첫 수업 지도 이후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내 길이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이후 그는 벨기에 브뤼셀 무드라 스쿨에서 정규 교수로 활동하면서,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페트르슈카', 프랑스 모리스 베자르 발레단의 '심포니 19' 등 후대에 큰 영향을 끼친 작품을 여럿 기획했다. 그는 "나이가 들어 조만간 은퇴해야지 않겠느냐"면서도 "일할 수 있을 때까지는 계속 트레이너로 살고 싶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는 세계 발레단을 누비며 한국 무용수를 왕왕 만났다. 제임스 전은 모리스 베자르, 강수진은 슈투트가르트, 김용걸은 파리오페라 발레단에서 그의 제자였다. 이 밖에도 그는 핀란드와 스웨덴, 프랑스 등지에서 만난 한국 무용수들에 대한 기억을 더듬었다. "한국 무용수는 세계 어디를 가도 굉장히 열정적이에요. '반드시 하루에 한 가지 이상 배워야 한다'는 제 인생철학과도 상통하는 부분이 있죠."
그는 "모든 무용수들에게 다 훌륭한 면모가 있기 때문에 누가 특별했다고는 꼽을 수 없다. 다만 수진과 용걸은 내 지도를 잘 받아들이고 빨리 습득했다. 과연 스타다웠다"라고 말했다.
나델리는 아직 정식으로 한국 발레 공연을 본 적은 없다. 하지만 국립발레단 클래스를 지도하면서 개개인의 기량은 세계적이라고 느꼈다고 했다. 또 "스웨덴 왕립 발레단은 표현주의, 파리 오페라 발레단은 전통성 등 특성이 뚜렷한데, 한국 국립발레단의 레퍼토리는 성격이 고루 분포돼 있는 것을 보니 작품 선정에 고심한 것 같다"는 인상을 전했다.
그는 13일까지 한국에 머무를 예정이다. 도쿄발레단을 다녀가면서도 한국식당에 들를 만큼 한국 문화를 사랑한다는 그는 "실제 와보고 서울이란 대도시에 완전히 매료됐다"면서 "언젠가 한국 공연을 보러 꼭 다시 올 것"이라며 특유의 선한 웃음을 지었다.
김혜경 기자 than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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