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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김연아와 황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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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김연아와 황영조

입력
2010.04.09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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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피겨 퀸'김연아(20)의 은퇴 여부를 둘러싸고 세간에 말들이 많다. 김연아의 은퇴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그가 어린 나이에 피겨 선수로서 이룰 것은 다 이루었다는 인식 때문이다. 김연아는 역대 처음으로 그랑프리 파이널, 4대륙 선수권, 세계선수권대회, 동계올림픽 등을 모두 제패,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바 있다.

김연아는 지난 달 31일 토리노 세계선수권대회를 마치고 귀국하며 가진 기자회견에서 '더는 오를 산이 없는데 앞으로 목표가 뭐냐'는 질문을 받고 오랜 침묵 끝에"산들을 넘은 지 얼마 안돼 다음 산을 아직 생각 안 해봤다"며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원했던 것을 다 이뤄 그 다음 목표를 어떻게 잡느냐가 걱정인데 다시 생각해보겠다"고 말한 바 있다. 한국 피겨 100년사를 새로 쓴 김연아가 앞으로의 진로를 놓고 고민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한 신문은 5일 모 업체와의 CF 재계약 과정에서 업체측의 1년 재계약 요구에도 불구하고 김연아 측에서 6개월 단발 계약을 역제의했다고 보도했다. 따라서 김연아가 이르면 캐나다로 돌아가는 5월말이나 늦어도 새 시즌이 시작되기 전인 오는 10월 께는 향후 진로를 결정할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김연아가 은퇴 쪽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지 않나 추정할 수 있는 부분이다.

부담감에서 벗어나 이제 모든 것을 다 이루고 행복한 고민을 하는 김연아를 보면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가 떠오른다. 황영조는 22살 때인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에서 일본의 모리시타 고이치를 제치고 깜짝 금메달을 따냈다. 이후 94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 우승, 올림픽 2연패가 기대됐지만 96애틀랜타 올림픽을 앞두고 은퇴를 선언했다. 당시 한창 뛸 나이인 26살 때였다. 육상 관계자들로부터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마라토너"라고 평가 받았던 황영조는 선천적으로 큰 폐활량과 지독한 연습량 등으로 8번의 풀코스 완주 만에 이룰 것은 다 이뤘다. 하계U대회, 바르셀로나올림픽, 히로시아 아시안게임 우승 등 지금의 김연아와 비교되는 대목이다.

황영조는 "솔직히 더 뛸 수 있었다. 올림픽 2연패도 자신 있었다. 하지만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한국 최고 기록 등 모든 걸 다 이뤄 더 뛸 의미가 없었다"며 "운동을 시작했을 때부터 정상에 있을 때 그만두는 게 멋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언제까지고 운동을 할 수는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김연아도 황영조의 전례를 따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세계선수권대회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려야 하고,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지 보통 사람들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하지만 "연습 중에 3번에 걸쳐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는 황영조의 말을 빌어보면 그 고통의 깊이를 어림 짐작할 수는 있겠다. 목표나 꿈이 없는 삶은 현재를 열심히 살아도 설익은 밥과 같을 수 밖에 없다. 주변 사람 누구도 김연아를 냉혹한 승부의 세계로 억지로 매몰차게 내 몰수는 없다. 오직 김연아 자신만이 또 다른 산을 찾아낸 뒤 그 산에 오르기 위한 고통을 인내할 준비가 돼 있을 때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다. 단 김연아가 은퇴를 결정하고 제2의 인생을 살든 아니면 선수 생활을 지속하든 결코 후회는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팬들의 몫은 김연아의 결정을 지켜보고 존중하면서 박수를 보내는 일이다.

여동은 스포츠부장 dey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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