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달 중순 미국 LA시내 피규에로아 거리. 이 곳 한쪽에 위치한 도요타 대리점에 차를 사려는 사람들이 몰려와 북새통을 이뤘다. 대량 리콜 사태가 빚어진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 곳을 찾은 손님들의 표정은 밝기만 했다. 마크 핸더스(41ㆍ회사원)씨도 이중 한사람. 그는 "지금은 클리어런스 세일(Clearance Sale)"이라며 "렉서스 구입의 적기"라고 말했다.
# 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뉴욕국제모터쇼. 이날 미국 빅3 중의 하나인 크라이슬러 세르지오 마르치오네 최고경영자(CEO)는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지나친 가격 출혈경쟁에 의한 매출 감소"라고 말했다. 크라이슬러 관계자는 "GM과 포드가 도요타 리콜 사태로 대규모 할인정책을 펴자, 우리도 4,000달러 이상의 할인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며 "하지만 출혈 경쟁을 경계한 마르치오네 회장이 승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도요타발 자동차 업계의 리콜 후폭풍이 시작됐다. 도요타의 대량리콜은 미국 자동차산업을 살리기 위한 과잉대응이라는 음모론까지 제기될 정도로 미국업계로서는 절호의 찬스였다. 하지만 후폭풍은 공교롭게도 미국 자동차업계를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다. 도요타 리콜로 반사이익을 노린 미국 업체가 무리한 판촉 경쟁에 나서고 있지만 기대만큼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5일 업계에 따르면 3월 미국 자동차시장 점유율은 GM 17.6%(전달 18.1%), 도요타 17.5%(전달 12.8%), 포드 17.2%(전달 18.2%)로 나타났다. 이들 업체의 공통점은 파격적인 할인정책. GM은 지난달 평균 3,519달러의 할인정책을 폈고, 도요타도 2,256달러의 인센티브로 맞섰다.
도요타는 대규모 리콜 충격으로 올 2월까지 판매가 급감하자, 국면 전환을 위해 미국에서 엄청난 가격 할인 카드를 빼들었다. 도요타는 지난달부터 60개월 무이자 할부를 단행했다. 이 정도의 할부는 사실상 차 값의 10%~20%를 깎아 주는 것이다. 더군다나 차를 할부로 사는데 익숙한 미국인들에게는 엄청난 혜택으로 받아들여 질 수 밖에 없다. 도요타 공격경영의 밑바탕은 막강한 자금력. 60개월 무이자 할부에만 2억5,000만달러(약2,800억원)를 배정해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도요타의 할인정책에 GM, 포드도 출혈을 감수하며 맞섰다. 도요타 차량을 구입한 경험자가 자사 차량을 구매시 1,000달러를 보상해 주는 것은 물론 딜러 마진도 높였다. GM, 포드는 이를 통해 시장점유율을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지난해 12월과 지난 3월을 비교할 때 GM과 포드의 시장 점유율은 GM 2.5%포인트, 포드는 0.3%포인트 떨어졌다. 결국 이런 '출혈 경쟁'은 자금력이 부족한 GM과 포드의 회생에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도요타와 맞붙으려다 결국 회사 수익성과 경쟁력 기반이 악화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미국 빅3 중에 하나인 크라이슬러의 세르지오 마르치오네 크라이슬러 CEO가 뉴욕국제 모터쇼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할인 정책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답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아직 속단하기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업체간 점유율보다 회복세에 접어든 자동차 수요의 혜택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를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자동차 시장은 최악의 상황을 맞았던 지난해 1분기에 비해 올 1분기 판매가 17.6% 늘었다. 덕분에 포드의 판매량도 지난해 1분기 대비 50.5%나 증가했고, GM도 동년동기 대비 판매량이 19.2% 올랐다. 도요타가 3.1% 느는데 그친 것에 비하면 양호한 성적이다. 하지만 이 수치는 지난 해 판매성적이 워낙 저조해 상대적으로 높아진 것일 뿐, 예년수준의 회복세를 보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손명우 우리투자증권연구원은 "현재의 상황으로 볼 때 GM과 포드의 회생 가능성을 언급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황이 불투명하다"며 "하지만 GM과 포드가 최근 소형차를 중심으로 판매가 조금씩 회복세를 보이고 있어 결과에 따라 회생의 여지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태희 기자 bigsmil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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