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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사 한국인으로 바꿔달라" 동포 못 믿는 탈레반 혐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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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사 한국인으로 바꿔달라" 동포 못 믿는 탈레반 혐의자

입력
2010.04.09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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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할 줄 아는 한국인 통역사로 바꿔달라."

국내에서 탈레반 활동을 했다는 의혹(본보 2월20일자 1,8면)을 받고 있는 파키스탄인 A(31)씨가 6일 첫 공판에서 자신을 돕기 위해 출석한 동족(同族) 통역사를 거부했다. 이로 인해 이날 재판은 인정신문과 검사의 공소사실 낭독만 진행한 뒤, 피고인의 모두진술은 다음 공판(22일)으로 미뤄졌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단독 정선재 판사 심리로 열린 재판에서 출입국관리법 위반,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협박 등 3가지 혐의로 구속 기소된 A씨는 재판부의 첫 질문인 이름과 생년월일에만 짧게 답한 뒤 곧장 "파키스탄인 통역은 원치 않는다. 영어를 할 수 있는 (한국인) 통역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했다. 갑작스런 A씨의 발언에 재판부가 당황하자 A씨를 기소한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 이제영 검사는 "수사과정에서도 한국인 영어통역사가 통역을 해줬다"며 "불법 입국과 동족 협박 사건에 대해 파키스탄인들이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많이 했다고 생각해 믿지 못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A씨는 타국에서 의지했던 동족 친구들에게 배신을 당했다는 생각에 법원에 등록된 통역사라도 동족의 도움은 받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A씨 옆에 선 통역에게 "오늘은 A씨의 인적사항과 혐의 내용이 적혀 있는 공소장을 확인하는 절차인데, 이것조차도 지금의 (파키스탄인) 통역이 싫으냐"고 물었다. 이에 A씨는 "그 정도는 상관 없지만 다음부터는 개인적으로 영어를 좀 하는 한국인을 원한다"며 통역사의 구체적 국적까지 언급했다.

재판이 끝난 후 이 검사는 "지인에 대한 배신감뿐만 아니라, 자신이 영어를 잘 하기 때문에 어눌하게 한국말을 하는 파키스탄인 보다는 한국인이 통역해 주는 게 재판부와의 의사소통에 유리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A씨의 한국인 통역사 요구는 국내에 거주하는 파키스탄인의 경우 자신의 실체를 잘 알고 있어 "불리한 통역이 이뤄지지 않을까"하는 우려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실제 이번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 예정인 한 파키스탄인은 A씨가 없는 상태에서 증인신문이 이뤄질 수 있도록 요청한 것으로 알려져 이 같은 분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A씨는 이날 재판에서 "위명(僞名ㆍ가짜이름) 여권에 기재된 이름은 형의 이름이 맞다"고 밝혔다. 위명 여권을 이용해 종교비자로 2003년 국내 입국한 뒤, 대구의 이슬람사원에서 성직자로 활동해 온 A씨는 수사과정에서는 관련 혐의 내용을 전면 부인하며 "여권상 이름은 내 이름이 맞다"고 주장해왔다. A씨는 당초 경찰 수사단계에서 미군기지 정탐, 탈레반 교리 전파 등의 활동을 했다는 혐의로 조사를 받았지만 뚜렷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아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 등으로만 기소됐다. 경찰은 탈레반 활동 혐의에 대해서는 계속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강아름 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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