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튤립혁명'으로 독재정권을 무너뜨렸던 키르기스스탄 국민들이 다시 거리로 뛰쳐나왔다. 혁명 5년 만에 독재자로 변해버린 쿠르만벡 바키예프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기 위해서다. 시위는 이틀 만에 전국으로 확대됐고 경찰의 발포 등으로 약 100명이 사망하고 200여명이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부총리가 인질로 붙잡히고 내무부 장관이 시위대에 맞아 사망했다는 증언까지 나오면서 키르기스는 다시 격랑 속으로 휘말리고 있다.
7일 수도 비슈케크에서 야당 지도부 검거, 언론 통제, 공공요금 5배 인상 등의 정부 조치에 분노한 시민 3,000~5,000명이 대통령궁으로 향하며 경찰차를 뒤엎고 불을 질렀다. 아킬벡 자파로프 부총리가 시위대의 인질로 붙잡혔다는 보도도 나왔다. 또 시위대들이 방송사로 진입해, 정규 방송을 중단시켰다. 국회의사당도 장악 당했고, 야당지도자를 검거한 검찰청사는 방화로 화염에 휩싸였다.
6일 첫 시위가 촉발됐던 북서부 탈라스시에서는 이날도 1만여 명이 경찰 본부로 진입했다. 이 과정에서 몰도무사 콩가티예프 내무부 장관이 시위대에 맞아 숨졌다는 증언이 나왔다. 동부 나린 시와 수도 외곽에 있는 토마크 시에서도 시위가 잇따랐다.
다니야르 유세노프 총리는 키르기스 전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했으며, 경찰은 고무총과 물대포, 최루가스로 대응하다 발포를 시작했고 시위대를 폭행했다. 시위대는 경찰차량을 빼앗아 차 위에서 키르기스 국기와 야당연합의 푸른 깃발을 흔들기도 했다.
야당 지도자 오무르벡 테케바예브는 시위대가 장악된 방송사에서 특별 TV회견을 갖고 "사망자가 100명 정도"라고 말했다. 보건당국은 19명이라고 밝혔다. 외신 기자들이 현지에서 직접 확인한 시신만도 각각 6~12구에 달했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되자 유세노프 총리가 야당 지도자와 이날 밤 ▦시위대 발포 중단, ▦야당 지도부 석방에 합의했다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그러나 시위대는 바키예프 대통령의 하야 전까지 물러서지 않을 기세여서, 이번 사태의 결과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중앙아 빈국인 키르기스는 올해 1월부터 정부가 난방비 등 공공요금을 5배까지 인상하면서 긴장이 높아졌다. 급기야 6일 최소 10명의 야당연합 지도자가 기습 검거되면서 민심이 폭발했다.
1991년 구소련에서 독립한 키르키스는 2005년 '튤립 혁명'으로 14년간 집권해 온 아스카르 아카예프 대통령을 하야시켰다. 무혈 혁명이 성공하면서 중앙아시아의 '자유의 섬'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이후 당시 야당총수였던 바키예프 대통령이 당선됐다. 하지만 취임 후 친인척 등용과 야당탄압, 언론 통제에 나서 독재로 변질됐다. 지난해 재선과정에서 부정선거 의혹이 불거졌으며, 정부를 비판한 기자가 암살되기도 했다.
이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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