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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폿게와 깅이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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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폿게와 깅이죽

입력
2010.04.09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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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여행의 '밥상'은 내 몫이었다. 좋은 분들과 함께 떠나는 제주여행의 제일 첫 자리에 놓을 음식으로 무엇이 좋을까 고민하다 '깅이죽'으로 정해놓고 최상의 선택인 것 같아 스스로 흐뭇해졌다. '깅이'는 바닷게의 제주 탯말이다. 깅이를 뭍의 바닷가에서는 '방게'라고 부른다.

깅이가 방게와 다른 점은 색깔이 훨씬 짙다는 것이다. 제주의 화산 잿빛과 흡사하다. 옛날 제주사람들은 깅이를 잡아 깅이죽을 쑤어 먹었다. 엄지손가락 반쯤 되는 크기의 깅이를 잡아와 산채로 맷돌로 곱게 갈아서 팔팔 끓이다가 좁쌀을 넣어 죽을 쑤었다.

깅이죽은 배고픈 시절 좁쌀 한줌으로 배부른 밥상을 만들었으며 고된 바다 일로 시리고 아픈 해녀의 뼈를 튼튼하게 하는 영양식이었다. 바닷게에는 미네랄이 풍부하니 해녀의 직업병인 관절염이나 신경통의 '자연 치료제'가 되었을 것이다. 제주사람이라고 깅이죽을 다 아는 것은 아니다.

깅이죽을 아는 제주 토박이는 구좌읍 하도리의 깅이를 최고로 친다. 하도리 깅이는 '폿게'라 부른다. 제주의 토속음식인 보말국, 몸국, 성게미역국은 이미 대중음식이 되었지만 깅이죽을 '슬로푸드' 방법으로 쑤는 밥집을 만나기는 어렵다. 내가 잘 가는 제주의 깅이죽 식당이 어디인지는 밝히지 않겠다. 때로는 보물지도에 숨겨 놓고 혼자만 알고 싶은 밥집이 있는 것이다. 저기, 벌써 깅이죽의 구수한 내음이 난다.

정일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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