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최장 새만금방조제길 33km 27일 오픈
새만금방조제 도로가 드디어 개통된다. 오는 27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새만금방조제가 드디어 일반에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개통을 앞두고 군산시 등의 도움을 받아 새만금방조제길을 먼저 올라탔다. 바다를 가르는 그 길을 타고 먼저 달려간 곳은 먼 바다의 섬이었던 신시도다. 63개 섬으로 이뤄진 고군산군도에서 듬직한 맏형격인 섬이다. 크기도 가장 큰 신시도는 이젠 방조제가 이어져 섬 아닌 섬으로 새로운 미래를 열어야 할 운명이다.
비응항의 새만금방조제 통제소를 통과해 섬을 향해 달렸다. 양 옆에 바다를 끼고 달리는 길이다. 왼편 오른편 모두에 수평선이 그어졌다. 배를 타고 먼 바다에 나가야만 볼 수 있는 사방의 수평선을 차를 타고 나가 느끼는 것이다. 모처럼 따뜻하게 비추는 봄볕으로 덥혀진 바다에선 해무가 수면 위로 낮게 깔렸다.
비응항 출발점에서 12km되는 지점, 야미도를 스친다. 방조제에서 제일 처음 맞는 섬이다. 원래 밤나무가 많다고 밤섬으로 불리던 것을 일제 때 밤을 한자로 잘못 표기해 야(夜)로 쓰면서'밤이 맛있는 섬'이란 요상한 뜻의 야미도(夜味島)로 불렸다고 한다. 하지만 이름이 운명을 결정짓는 걸까. 방조제가 연결된 야미도엔 곧 관광 위락시설들이 들어설 태세다. 누구도 기대치 않았던 서해의 작은 섬 야미도의 밤이 정말 달콤해지려 하는 것이다.
야미도에서 2km 더 달려 도착한 신시도. 한참 마무리 공사중인 광장 한쪽에 차를 대고 산으로 올랐다. 공사장을 벗어나니 걷기 좋게 잘 닦여진 월영재 고갯길이 나타났다. 길섶엔 진달래꽃이 곱게 모습을 드러냈다. 살랑이는 봄바람을 타고 연분홍 꽃잎이 나부꼈다.
진달래와 월영봉 기암을 감상하면서 오르다 보니 어느덧 월영재 고갯마루다. 고개 저편으로 신시도의 남은 섬 자락과 어우러진 선유도 장자도 무녀도 등 고군산도의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졌다. 오르막의 힘겨움을 단박에 잊게 만드는 그림이다. 옹기종기 모여 앉은 섬들이 종알종알 수다를 떠는 것 같다.
이제부터는 고갯마루 옆의 능선을 타고 월영봉 정상으로 오른다. 오르면 오를 수록 고군산도의 풍광이 더욱 크게 펼쳐지는 걸음이다. 월영봉은 신라의 대학자 고운 최치원 선생의 전설을 품고 있다. 최치원이 이 경치에 반해 이곳에 단을 쌓고 공부를 했는데, 그의 글 읽는 소리가 바다 건너 중국에까지 들렸다고 전해진다. 과장치곤 너무 심하지만 월영봉 조망 하나만큼은 분명 최치원도 반했을 만한 풍광이다.
월영봉 정상은 또 새만금 방조제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 역할을 한다. 길게 뻗어 해무 속으로 사라지는,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33km의 방조제 구조물의 위용을 실감할 수 있다.
월영봉에서 능선을 타고 내려오는 길. 시원하게 시야가 뚫린다. 200m도 채 오르지 않고도 1,000m급 이상 산의 눈 맛을 볼 수 있는, 섬산행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다. 길 바닥에 돌들이 깔렸는데 방금 돌을 캐낸 채석장의 파편처럼 날카롭다. 타일조각 같이 얇은 돌조각들이다. 마치 산의 각질이 떨어져나간 듯하다. 섬의 바위가 켜켜이 갈라져 쪼개져 나간 것들이다.
능선을 내려오면 작은 해변이다. 모래 대신 조약돌로 이뤄진 미니해수욕장. 파도에 닳고 닳은 넓적한 돌멩이가 해변을 메웠다. 물수제비 뜨기 딱 좋은 크기의 조약돌이다.
미니해수욕장에서 호젓한 바닷소리 벗삼아 한참을 쉬었다가 다시 산행을 시작했다. 곧 방조제가 열리면 사람들이 물밀듯 밀려올 것이고, 섬은 이런 호젓함을 몹시도 그리워할 게다. 이번에 오르는 곳은 대각산 전망대. 공룡 등뼈처럼 툭 불거져 나온 바위 능선길을 오른다. 왼쪽으로 신시도의 가장 큰 동네인 지풍금마을이 내려다보였다. 지풍금은 '깊은 금'즉, 깊은 바다를 뜻한다. 한때 100여 가구 넘었던 마을엔 80여 가구가 남아있다.
대각산 정상에는 군산시가 건설한 전망대가 놓여있다. 3층 건물 높이의 전망대 가장 높은 곳에 섰다. 선유도 무녀도 장자도 말도…고군산도의 크고 작은 섬들이 발 아래다. 한없이 아늑하고 한없이 다정한 풍경이다.
이들 섬들은 알았을까? 언제고 저 넓은 바다 건너 육지와 연결될 지를. 고군산 수천 년 역사 속, 단군 이래 최대의 변화가 닥칠지를.
신시도(군산)=글ㆍ사진
■ 고군산군도 62개의 섬들이 호수에 뜬 별처럼
63개의 섬들이 별처럼 모여 있는 곳. 오밀조밀하게 모여 앉은 이 섬들 때문에 고군산군도는 '호수에 뜬 섬들'로 불렸다. 아주 오래 전부터 중국과 한반도를 잇는 뱃길의 길목으로, 서남해안에서 개경이나 한양으로 가는 통로의 중간 허리로 교통의 요충지였던 곳이다.
지금 군산의 시발점도 慕?이 고군산군도다. 예부터 이곳에 있던 수군 진영을 군산진이라 불렀는데 조선 세종 때 진영을 금강 하구로 옮기면서 원래 수군 진영이 있던 이들 섬을 옛날의 군산이란 뜻의 고군산이라 불렀다.
고군산도에서도 섬속의 섬으로 불리는 곳은 선유도다. 신시도 무녀도 방축도 관리도 명도 등 크고 작은 섬들로 둘러싸여 가장 빼어난 절경을 지니고 있는 섬이다.
선유도엔 충무공의 자취가 남아있다. 충무공은 12척의 배로 133척의 일본 배를 물리친 명량해전 직후, 지친 병사들과 전함을 추슬러 우수영 임자도 등을 거쳐 선유도에 도착했다. 충무공은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며 전함을 수리하고 병사들을 훈련시켰다. 충무공의 군대가 진을 쳤던 곳 이름이 선유도 관광의 시작점인 진말이다. 충무공은 명량해전의 승리를 보고하는 장계를 이 섬에서 초안했다고 전한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부드러운 모래가 넓고 길게 이어진 선유도해수욕장이다. 백사장 끝에는 기이하게 생긴 바위 봉우리 2개가 우뚝 섰다. 망주봉이다. 유배 온 선비가 매일 산봉우리에 올라 임금을 그리워했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이 망주봉 기슭에는 오룡묘 신당이 있다. 매년 당제와 별신제를 모시던 곳이다. 선유도 별신제는 매우 유명해 내로라 하는 굿쟁이들이 몰려들어 삼현육각을 잡고 남사당패까지 몰려와 신명의 굿판을 펼쳐냈다고 전한다.
선유도에서 보행다리가 연결된 무녀도는 선유도 보다 한가로이 섬을 여행할 수 있다. 상업적인 모습이 덜해서 좋다. 선유도와 보행교로 연결된 또 다른 섬은 장자도다. 장자도는 또 대장도와 다리로 연결됐다. 이들 다리는 모두 걸어서만 넘을 수 있는 좁은 철교다. 다리로 이어진 선유도와 장자도 무녀도 곳곳에는 기암이 빚은 절경이 즐비하다. 그 섬들의 풍경 속으로 빨간 낙조라도 물들면 가슴엔 잊혀질 수 없는 그림이 새겨진다.
새만금방조제 연결 이후 신시도-무녀도-선유도-장자도를 잇는 큰 다리가 2013년이면 개통될 예정이다. 공사가 완공되면 새만금 방조제에서 장자도까지 쌩쌩 차가 달린다. 신시동서 장자도까지 15분도 채 안 걸릴 것이다. 그렇게 빨리 달려갈 이유가 있을지 모르겠다. 선유도(군산)=글ㆍ사진 이성원기자
이성원 기자
■ 여행수첩/ 고군산군도
● 새만금방조제의 총 길이는 33km. 방조제는 전북 군산의 비응항에서 시작해 고군산도의 야미도 신시도 등을 지나 부안의 변산반도에 이른다. 신시도가 서있는 곳은 방조제의 절반 지점이다.
● 신시도가 방조제로 연결됐지만 바로 마을까지 차를 몰고 갈 수는 없다. 월영재 고개를 걸어 넘어야 한다. 신시도 마을을 잇는 도로공사는 계획 중이다. 이 도로가 2013년이면 무녀도 선유도 장자도까지 이어진다.
● 선유도 가는 배는 군산여객선터미널에서 출발한다. 선유도에 1시간 가량 머무는 유람선은 비응항에서도 출발한다. 비응항은 새만금방조제 개통에 발맞춰 생긴 신항이다. 새만금방조제에 갇힌 내항의 배들이 비응항에 새로 둥지를 틀었다. 비응항에는 새만금종합수산시장이 지난달 새로 문을 열었다. 1층의 가게에서 먹고 싶은 생선을 사가지고 2층의 식당에 올라가 상차림비를 내고 먹는 식이다. 군산에서 가장 저렴하게 횟감을 구입할 수 있는 곳이다.
● 신시도에는 여러 민박집이 있다. 미리 예약하면 민박집에서 식사도 할 수 있다. 신시도 최정봉(010-9886-0417) 이장에게 연락하면 민박집과 식당을 소개받을 수 있다.
● 신시도 월영봉-대각산전망대-지풍금마을로 이어지는 트레킹 코스는 2시간 가량 걸린다.
● 군산의 이성당이란 빵집이 유명하다. 60여년이 넘은 오랜 공력의 제과점이다. 긴 세월이 묻어난 빵맛에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군산의 명소다. (063)445-2772
● 군산 명산사거리 부근에 콩나물국밥집 골목이 있다. 일흥옥(063-445-3580), 일해옥(063-443-0999) 등에 인파가 몰린다. 옛 조선은행 앞 중국집 빈해원(063-4452429)은 화교가 운영하는 57년 된 식당이다.
■ 새만금에 갇힌… 김제 심포항
33km의 바닷길 드라이브. 땅 위로 달렸으면 별것 아닌 거리인 것을 바다 위로 달려서인지 멀미가 나는 듯 머리가 조금 어지럽다. 새만금방조제를 달리고 난 뒤 방향을 잡은 곳은 전북 김제의 심포항이다.
끝없이 펼쳐진 김제 만경의 너른 들을 가로질렀다. 들판은 광활했다. 오죽했으면 김제의 가장 넓은 이 들녘의 행정명이 광활면인가. 지평선의 끝자락 바닷가에 다리미질에 밀려 올라간 옷감의 끝자락 같은 나지막한 봉우리가 나타난다. 산이라기 보다 작은 언덕이라 부르는 게 적당한 해발 72m의 진봉산이다.
산자락 바로 밑, 김제 평야가 바다와 만나는 꼭지점에 심포항이 있다. 김제 땅에서 그나마 바닷가 구실을 해왔던 곳이다. 심포가 아닌 금포로 불릴만큼 갯벌에서 엄청나게 백합을 잡아들여 흥청거렸던 포구다.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곳이라 각종 물고기들로 항상 넉넉했던 포구다. 하지만 지금 심포는 바다를 잃었고 그 좋은 어장과 황금개펄을 잃었다. 새만금방조제가 가둔 바다가 예전 바다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전히 포구엔 고깃배들이 정박해있고, 거리엔 백합 좌판이 늘어서 있다. 하지만 흥청거렸던 예전의 분위기가 아니다. 이전의 심포를 그리며 찾아온 이들이 두리번거리고 이들을 상대로 호객을 하는 좌판의 상인들이 있지만 그리 신이나 보이지 않는다.
바다엔 갈대군락이 성큼 내려앉았다. 푸석해진 뻘 바닥엔 쓰레기 더미가 쌓여가고 있다. 지금 심포항 앞 바다는 거대한 담수호가 돼가고 있다. 아직은 방조제 틈바구니로 바닷물이 스며들어 오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분명한 건 바다가 막혔다는 것.
심포항의 우울을 달랠 요량으로 인근의 망해사를 찾았다. 진봉산 자락 한귀퉁이에 서있는 사찰이다.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전과 학승이 기거한다는 낙서전, 요사채로 보이는 청조헌과 산신각 범종각 등이 있는 작은 절집이다. 바닷가에 굵게 뿌리 내리고 있는 팽나무 몇 그루 위엄을 드리우고 있다.
이 절에서 오래된 건물은 낙서전이다. 1589년 진묵스님이 처음 지은 것을 1933년, 1977년 고쳐지었다고 적혀있다. 절 앞마당에는 땅밑으로 돌아 내려가는 돌계단이 있다. 지하의 우물로 안내하는 길이다.
절은 작지만 절의 뜨락은 무량하다. 망해사 앞 무망한 갯벌, 바다가 모두 앞마당이다. 계곡 물소리 들리는 숲 속의 절들이야 널렸지만 앞마당에 바다를 펼치고 있는 절들은 그리 많지 않다. 사찰 건물 중 청조헌(聽潮軒)이란 편액이 눈에 들어왔다. 물결의 소리를 듣는 곳이다. 밀물과 썰물의 흐름을 듣고 선 망해사에 딱 어울리는 이름이다.
바닷가 한쪽에 세워진 해우소가 걸작이다. 재래식 화장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 쪼그려 앉으면 눈높이에 미닫이 창이 달려있다. 드르륵 그 작은 창을 열면 바다가 한걸음에 다가온다. 시원한 바다 풍경에 취해 해우소에 들어온 이유를 잊어버릴 듯하다. 낙서전 앞 두 그루의 팽나무는 400년 가량 된 노거수다. 굳이 나이테를 끄집어내지 않아도 격하게 뒤틀린 둥치가 그 세월을 이야기 한다.
바다를 바라보는 망해사가 이제 바다를 그리워하고 있다. 사실 지금 눈 앞의 바다도 진짜 바다는 아니다. 방조제에 둘러싸인 단절된 바다다. 망해사의 슬픈 바다다.
청조헌 앞에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 모든 설움을 태울 붉은 노을이 깃들길 기다렸다. 경내에 드리웠던 팽나무 그림자 길게 늘어지다 마침내 지워질 때, 서편 하늘의 붉은 태양도 함께 스러졌다. 멀어, 그 윤곽을 또렷이 볼 수 없지만 망해사의 태양이 넘어간 곳은 바다가 아닌 방조제였을 것이다.
■ 군산 경암동 철길마을
군산에 가면 빛 바랜 흑백사진의 기억들을 떠올릴 수 있다. 개발의 소용돌이 속 우리의 근ㆍ현대 과거들이 막무가내로 사라져버렸다. 다행히 군산에 그 기억들이 온전히 남아있어 과거를 좇는 이들을 껴안고 있다.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이 몰려드는 군산 경암동 철길마을도 그 중 하나다. 어릴 적 들었던 '기찻길옆 오막살이'동요와 딱 어울리는 마을이다. 이마트 앞 대로변 바로 뒤에 붙어있다. 철길마을로 들어서면 잊혀졌던 과거로 타임머신을 타고 이동하는 느낌이다. 철로에 다닥다닥 붙은 허름한 집들의 풍경이 가슴에 싸한 찬 기운을 불어 넣는다.
지금은 기차가 다니지 않는 녹슨 철길. 그곳에 우리네 또 다른 이웃이 둥지를 틀고 있다. 나그네는 기찻길 옆 오막살이의 향수를 느끼러 오지만 정작 그곳에서 사는 그들에겐 삶의 현장일 뿐이다. 여름이면 채송화가 작은 화단에 곱게 피어나고, 각종 화분으로 예쁜 정원을 꾸미고 사는 곳이다.
창문 밖으로 달그락 설거지 소리, 지지직 TV 채널 돌아가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기찻길 옆 아이를 깨울 수 없어 정말 조심조심 발 끝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걸었다. 함부로 카메라를 들이대며 그들 일상을 조준하는 게 민망하다. 그들의 삶에 대한 모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발걸음이 그들의 쉼을 깨트릴까 또 조심스럽다.
이 철길마을은 일제 때 조성됐다. 원래 갯벌이던 땅에 일제가 간척사업을 벌여 방직공장을 만들려 했다. 그리곤 군산역에서 방직공장 부지까지 2.5km 구간에 철길을 놓았다. 그 방직공장 터에 북선제지가 들어섰고 해방 이후에도 고려제제, 세풍제지 등 종이회사가 차례로 공장을 차지했다. 종이회사의 원자재를 실어 나르던 철도라 '제지선' 또는 '종이철도'로 불렸다. 열차는 2008년 6월까지도 하루 2번은 다니다가 지금은 완전히 중단됐다.
군산은 개항 도시다. 1899년 일제에 의해 억지로 문을 연 개항장이다. 군산엔 당시의 유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군산항을 통해 일제는 전북 곡창지대의 쌀을 일본으로 실어 날랐다. 당시 약탈의 중심지였던 해망로 인근의 근대문화유산 중 보존이 가장 잘 된 곳은 구 군산세관 건물이다. 90년대까지 실제 세관 건물로 사용됐으나 현재는 군산의 100년 역사를 알려주는 사진들과 물품들이 전시돼 있다.
해망로와 맞닿은 군산 내항에는 당시 3,000톤급 기선을 6척이나 댈 수 있었던 뜬다리부두(수면의 높이에 따라 위아래로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한 다리 모양의 구조물)가 남아있다. 수백만 섬의 쌀을 실어 나르던 곳이다.
옛 히로쓰가옥은 일제시대 포목상이었던 히로쓰가 건축한 정통 일본식 저택이다. 영화 '장군의 아들'에서 야쿠자 두목 하야시의 집으로도 등장했고, 영화 타짜에서 주인공 고니(조승우역)가 스승 평경장(백윤식역)으로부터 화투 교육을 받던 장면의 배경으로 쓰였다.
일본식 사찰 건물인 동국사는 조용한 주택가에 들어앉았다. 건물을 감싼 무성한 대나무숲이 인상적인 곳이다. 당시는 금강사라 했다가 한국의 불교가 인수하면서 동국사란 이름을 얻게 됐다. 복도를 통해 법당과 화장실 목욕탕 등으로 모두가 이어지는 일본 건축의 특성을 엿볼 수 있다.
개정동 군산간호대학에 있는 이영춘 가옥은 일제시대 최대 농장주였던 구마모토 리헤이의 집이었다. 그는 고리대금업으로 땅을 그러모아, 한 때 여의도 면적의 10배가 넘는 땅을 소유했었다.
이성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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