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54번째 맞는 신문의 날이다. 자축하고 축하해야 마땅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독자는 갈수록 줄고 있고 광고 사정도 좋지 않다. 최고의 엘리트로 선망 받던 기자들이 줄줄이 떠나고 있다. 문을 닫는 신문사가 잇따르고 있다는 나라 밖 소식도 남의 일처럼 들리지 않는다.
신문의 날을 맞는 신문인 여러분의 어깨는 무겁고 마음은 착잡할 것이다. “신문이 죽으면 민주주의가 죽는다”는 신문의 사회적 역할론, “신문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다”는 격려도 공허하게 들릴 것이다. 여러분은 신문의 위기를 일깨워주는 암울한 이야기를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다.
정보 매체에서 지식 매체로
오늘 여러분에게 신문의 사회적 기능이 어떻고, 언론의 역할이 어떻고 하는 인사치레를 하지는 않겠다. “신문의 미래는 여전히 밝다”는 상투적인 말로 격려할 생각도 없다. 그런 격려와 위로의 말은 너무 많이 들어왔고, 실제로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신문인이 서둘러야 할 구체적인 숙제를 던져 줄 것이다. 어떤 것은 어렵고, 또 어떤 것은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첫째, 신문을 포기하기 바란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종이신문을 신문의 전부로 여겨왔다. 이제 여러분은 ‘프린트 퍼스트(print first)'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활자를 중심에 두는 종이신문에 운명을 맡겨서는 안 된다. 인터넷, 모바일을 앞세우고 종이는 맨 뒤에 두는 ‘프린트 라스트(print last)‘ 전략을 주저 없이 실천에 옮겨야 한다.
둘째, 기자에 집착하지 말기 바란다. 이제는 뉴스를 만드는 기자가 중심인 시대가 아니다. 이야기를 만드는 '콘텐츠 퍼스트(contents first)' 시대이다. 딱딱한 뉴스만을 만드는 저널리스트는 살아남을 수 없다. 대신 ‘콘텐츠 개발자(contents creative)'로, '스토리 텔러(story-teller)‘로 거듭나야 한다. 미디어 황제 루퍼트 머독은 “콘텐츠는 모든 전자기기의 황제”라고 말했다. 미디어의 힘은 배터리가 아니라 콘텐츠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셋째, 방송이 아니라 모바일에 승부를 걸어라. 지금 신문업계는 너도나도 방송에 진출하기 위해 안달이다. 방송 진출이 마치 신문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요술방망이처럼 여기고 있지만, 잘못된 판단이고 착각이다. 방송의 위상이 신문에 비해 큰 것은 맞지만, 모바일에는 못 미친다.
지금으로서는 포털을 뛰어넘고 방송을 건너 뛰어 신문의 영화를 되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모바일이다. 모바일은 모든 콘텐츠를 쓸어 담을 수 있는, 지금까지 나온 가장 강력한 매체이다. 신문의 콘텐츠와 모바일의 플랫폼이 손을 잡으면 어떤 매체도 따를 수 없는 강력한 ‘이동성 콘텐츠’를 탄생시킬 수 있다.
넷째, 정보매체가 아닌 지식매체로 탈바꿈하기 바란다. 신문은 이제까지 가장 강력한 정보제공 매체였다. 그러나 정보가 폭주하는 지금은 정보보다 지식이 더 요구되는 시대이다. 쓸모 없는 정보는 넘치지만, 필요로 하는 지식은 부족하다. 속보성 정보는 온라인이나 포털에 맡겨라. 대신 신문을‘지식을 가공하는 발전소’로 만들고, 세상을 읽어주는 ‘정보의 인덱서(indexer)’가 되기 바란다.
옛 영화 되찾는 실천을
여러분에게 던진 숙제는 보기에 따라 어려울 수도 있고, 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누구보다도 여러분이 잘 할 수 있는 분야라는 점에서 희망적이다. 그리고 가능성도 크다.
문제는 실천이다. “신문이야말로 모든 매체의 황제”라는 사실을 스스로 믿고 행동에 옮긴다면, 신문의 옛 영화를 되찾는 일은 의외로 빠를 수 있다.
이완수 동서대학교 영상매스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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