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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이런 특별수사라면…

입력
2010.04.09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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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전 국무총리에 대한 1심 법원 선고가 9일 내려진다. 지난해 12월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된 지 109일 만이다. 13차례의 집중 심리에 헌정 사상 첫 총리 공관 현장 검증까지 진행했지만 재판 결과를 예상하기 힘들 만큼 검찰과 한 전 총리 측은 팽팽히 맞서 있다.

검찰의 허술한 한 전 총리 수사

이 사건 쟁점은 5만 달러를 한 전 총리에게 주었다는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 진술의 신빙성 여부, 딱 한 가지다. 물증이 없어도 곽씨 진술이 믿을만하다고 판단되면 한 전 총리는 유죄다. 반대로 곽씨 진술이 일관성과 합리성을 결여하고 있어 믿을 수 없다면 한 전 총리는 무죄다. 그것은 물증은 없고 진술만 있는 뇌물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례이다.

이 사건은 또 정치적 성격이 도드라진다. 한 전 총리의 정치적 입지 때문에 수사ㆍ재판 과정에서 정치 이슈가 됐고, 유ㆍ무죄 중 어느 쪽이든 6ㆍ2 지방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게 돼 있는 구조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한 쪽 당사자 측의 격한 반발은 분명해 보인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사건 수사를 정치적 의도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사건처럼 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는 주장이다. 또 검찰이 곽씨의 혐의와 재산상 손실을 덜어주는 조건으로 뇌물 공여 진술을 받아냈다는 의혹도 나온다. 이 역시 정황은 있으나 증거는 없다. 곽씨와 전 정권 인사들의 친분을 들어 표적수사라는 주장도 제기되지만 수십 억대의 비자금 사용처를 캐는 과정에서 진술을 확보했다는 검찰 설명이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검찰이 곽씨 조사 이전부터 한 전 총리를 목표로 삼아 수사에 나선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의 정치적 의도나 배경을 소재로 논쟁하는 것은 그 자체로 정치적이다. 그보다는 검찰 수사 방식의 문제를 따지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접근이다. 뇌물수수 수법이 갈수록 교묘해지는 수사 환경의 어려움을 핑계로 확실한 유죄 입증 수단인 증거 찾기에 소홀한 것은 아닌지, 돈을 주었다는 진술에만 의지해 일단 기소부터 하는 것은 권한 남용이 아닌지 살펴보는 게 공허한 정치적 논쟁보다 더 효율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한 전 총리에 대한 재판에서 검찰은 세밀하기로 정평이 난 특별수사가 의외로 허술했음을 드러내 보였다. 곽씨는 돈의 액수와 준 방법, 후원금 기탁 여부 등 핵심 진술을 모두 바꿨고, 그로 인해 검찰은 공소장 내용까지 변경해야 했다. 한 전 총리 가족의 환전 내역이 없으니 5만 달러는 아들 유학비로 사용했을 것이라는 추정을 뇌물수수의 정황으로 제시한 것은 엉뚱했다. 사실관계를 엄밀히 따져야 할 검찰의 태도라고 볼 수 없을 정도다. 한 전 총리의 골프리조트 이용 문제를 뒤늦게 제시한 대목에선 재판 말미의 다급함이 읽혔다. 모두 수사 과정에서 검찰이 두 번 세 번 확인하고 걸렀어야 할 사안들이다.

이론의 여지가 없도록 범죄를 증명하는 것은 검찰의 책무다. 명백한 물증이나 정황 증거 없이 진술만으로 한 사람의 삶에 큰 상처를 내는 것은 권력의 과잉 행사다. 궁박한 처지에 몰린 피의자의 진술만 믿고 증거로 뒷받침되지 않은 혐의로 기소하는 것은 정당성이 없다. 극단적으로 말해 진술만으로 기소부터 하고 보는 이런 식의 특별수사라면 선량한 사람도 죄인으로 전락할 수 있다.

특별수사방식 성찰 계기 삼아야

물론 확보된 진술을 무시하는 것은 직무유기다. 하지만 뇌물수수를 일관되게 뒷받침할, 결코 흔들리지 않을 정황 증거조차 확보하지 못한 수사라면 보류하는 것이 당당하다. 그것이 검찰이 지난해 제시한 새로운 수사 패러다임과도 부합한다.

한 전 총리 재판 결과가 무엇이든 검찰은 이번 기회를 특별수사 전반을 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수사 의욕이 확신으로 확대되는 오류의 구조가 작동하는 것은 아닌지, 수사의 어려움을 이유로 쉽고 편한 길을 가려는 타성이 조직에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열 명의 죄인을 놓치더라도 단 한 명의 억울한 죄인을 만들어선 안될 테니 말이다.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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