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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보리앵두 먹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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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보리앵두 먹는 법

입력
2010.04.05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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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두를 오래 먹는 법은 따먹지 않는 거다

한 주먹 우물거려도 앵두씨나 가득할 것을

싸돌아다니는 닭들 목구멍이나 막히게 할 것을

툇마루에 그림자 하나 앉혀놓고 눈으로 먹는 거다

보리알만해진 눈곱 곁에 앵두알 눈동자를 짝지우는 거다

눈동자 속으로 날아드는 새들의 노랫소리까지 받아먹는 거다

앵두 뺨을 훔치는 소만 망종의 달빛까지 핥아먹는 거다

앵두 뺨과 앵두 이파리의 솜털이 내 귓불에도 돋아나게 하는 거다

그리하여 달빛 앵두인 양 날 훔쳐보는 사람 하나 갖는 거다

나 몰라라 슬그머니 앵두 이파리 뒤쪽에 숨어

혼자 날아온 새처럼 깃이나 다듬는 거다

처음 만나는 눈길인 양 쌍꺼풀만 깜작이는 거다

돌아앉아 앵두가 떨어지지 않을 만큼만 나직이 우는 거다

● 벚꽃을 보려고 남쪽 지방으로 여행을 갔는데, 아직 일러 벚꽃은 피지 않았더군요. 아쉬운 마음에 걸어가는 연못가에 버들가지들만 바람에 하늘하늘. 봄꽃들, 잎보다 일찍 피는 부지런한 꽃들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지난해 잎이 달렸을 때 눈이 맺힌, 아주 게으르게 피는 꽃이라는 걸 며칠 전에야 알았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조바심도 슬그머니 사라지더군요. 올해의 꽃들은 너무나 동작이 느리지만, 이제 다시 눈이 내리는 일은 없겠죠. 어쨌든 봄은 찾아오겠죠. 오래오래, 늦든 빠르든 오래오래 볼 수 있는 봄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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