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민 지음/산책자 발행ㆍ352쪽ㆍ1만8,000원
'있는 그대로의 기록'으로 인정받는 사진은 '강압적 사실성'을 가진 기록 매체다. 글로 쓰여진 역사는 부정해도, 필름에 각인된 이미지를 거부하는 것은 쉽지 않다. 산더미처럼 쌓인 문헌보다 빛바랜 몇 장의 사진이 종종 더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 이는 이미지가 텍스트보다 빠르고 강하게 머릿속에 스미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 근현대사도 마찬가지. 수탈과 억압의 기억이 감광층을 이룬 네거티브 필름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한 세기 전의 암울함이 시차를 넘어 침투해 온다.
<제국의 렌즈> 는 사진에 대한 이런 인식구조의 위험성을 지적, 근대 조선을 찍은 사진에 씌워진 왜곡된 의식을 뜯어보는 책이다. 사진사를 전공한 저자 이경민씨는 사진아카이브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근대 사진을 통해 '재현의 정치학'을 탐구한 <경성, 사진에 박히다> 등의 책을 썼다. 이번 책에 실린 150여 장의 사진은 역사 교과서나 박물관에서 흔히 보던 것들이다. 그러나 '사진의 정치학'을 구축해가는 저자의 시각을 따라 감상하면, 한국을 식민의 피사체로 삼았던 제국주의 일본의 앵글을 느낄 수 있다. 경성,> 제국의>
저자는 "사진은 거짓말을 한다"고 단언한다. "사진은 그것이 실재의 외양과 닮았다는 이유로 객관적인 시각 자료가 될 수 없으며, 더욱이 외계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투명한 창이 될 수 없다. 그 사진 뒤에는 항상 사진의 투명성에 기대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관철시키고자 하는 재현 주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근대 조선의 이미지도 어쩌면 "사진이 만들어낸 표상 효과"일지 모른다며 사진을 둘러싼 '재현의 정치학'에 주목할 것을 강조한다.
책은 세 부분으로 나뉜다. 사진을 통해 조선 황실의 이미지를 전략적으로 조작한 일본을 다룬 1부, 왜곡된 인류학의 앵글로 탄생된 우스꽝스러운 '조선 인종'의 기록 사진에 대한 2부,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서구인의 시각에 갇힌 조선의 모습을 고찰하는 3부다. 각 부분은 근대 사진 자료들과 그것을 정치학적 관점으로 분석하는 저자의 해설로 이뤄져 있다. 보론으로 '사진 인문학'을 위한 아카이브 구축을 강조하는 저자의 주장이 논문 형태로 정리돼 수록됐다.
41쪽, 고종과 순종의 모습이 나란히 담긴 사진을 보자. 1900년에서 1903년 사이에 촬영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이다. 서양식 예복에 칼을 차고 있지만 자세는 비뚤어져 있고 시선은 흐릿하고 입은 벌어져 군주의 위엄을 찾아보기 힘들다. 저자에 따르면 고종은 사진 기술을 익힌 왕실 서화가에게 자신의 초상을 맡기려 했으나, 조선 통감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인 사진사를 붙여 '이미지 메이킹'을 관장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표상 체계 속의 조선 황제는 어설픈 식민지 군주의 모습을 벗어날 수 없었다.
저자는 온통 더럽고 가난하고 우매하게 기록된 사진 속 조선 인민의 모습도 의도적으로 재현된 조선의 모습이라고 지적한다. "제 몸집보다 네댓 배는 더 큰 짐을 진 지게꾼, 엿판을 든 꼬마, 진흙투성이 골목… 우아하게 차려입고 카페에서 환담을 나누는 세련된 모던 한국의 이미지는 왜 떠오르지 않을까? 이미지를 각인시켜주는 가장 효과적인 매체, 사진이 우리의 근대를 그토록 전근대적으로 표상해 놓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타자화된 근대적 공간으로서의 조선이 사진을 통해 무수한 표상들로 채워져 있으며, 그러한 사진적 표상이 누구에게나 투명한 것으로 오해되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저자는 일본에 의해 사진으로 기록된 우리의 근대를 "오인된 주체, 실체 없는 근대"라 규정한다. "사진에 사로잡힌 제국의 시대 이전의 조선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이 책을 통해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란다"는 것이 책의 서두에 붙인 저자의 바람이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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