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1학년 때 짝지, 키가 큰 재선은 방송반이었다. 점심시간에 잠시 음악을 틀어주었다. 친구가 방송을 진행하는 날이면 내게 희망곡을 물었다. 건전가요 수준을 넘어설 수 없는 교내방송이었지만 재선은 폴 모리아 악단의 'Love is blue' 'All for the love of a girl' 등을 내가 신청한 곡이라는 소개와 함께 슬쩍 틀어주었다.
재선에게서 나는 팝과 록을 배웠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다이아몬드 스텝'도 배웠다. 그때 청춘들의 해방구는 음악다방이었다. DJ에게 'Request Music'을 신청해 듣던 음악다방은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따라 이젠 사라진 추억의 공간이 되어버렸다.
음악다방은 커피숍으로, 카페로, 지금은 커피전문점으로 진화해버렸다. 내가 사는 고장의 울주문화예술회관에서 '추억의 음악다방'전 초대장을 보냈다. 전시장을 음악다방으로 재구성하고 왕년의 인기 DJ가 수천 장의 LP판을 배경으로 앉아 사연을 소개하고 신청음악을 들려주는 이색적이고 재미있는 전시회였다.
추억을 문화로 만드는 기획이 좋았다. 관람객은 같은 표정으로 같은 추억에 잠긴, 그 옛날 음악다방 단골들이었다. 오랜만에 재선에게 배운 닐 다이아몬드의 'Solitary man'을 신청해 들었다. 동행한 시인이 그런 노래도 아느냐며 놀란다. 직직거리는 '양판'의 잡음이 따뜻하고 정겨웠다.
정일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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