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로부터 공탁금 관련 자료를 넘겨 받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였던 우리 정부의 일제 강제동원 노무동원자에 대한 피해보상이 차질을 빚을까 우려되고 있다. 정부가 과거사 관련 위원회를 통폐합하면서 기능이 크게 약해졌기 때문이다. 정부가 관련 예산마저 삭감하려 하자, 일각에서는 위원회를 없애려던 정부계획이 여론에 밀려 어렵게 되자 사실상 '식물위원회'를 만들려 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24일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와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를 통합해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를 출범시켰다.
2004년부터 일제 강제동원 희생자에 대한 피해조사를 담당하던 진상규명위 활동시한이 올해 3월말 끝나자, 진상규명위 피해조사 내용을 근거로 보상을 지원하는 태평양전쟁 지원위와 통합해 활동시한을 연장한 것이다.
정부는 그러나 새로운 위원회 활동은 6개월씩 두 차례 연장을 포함해 2012년까지로 정하면서, 유독 피해조사 업무만 시한을 내년 2월로 못박았다. 그 이후는 보상업무만 할 수 있도록 했다.
공탁금 관련 기록 17만여건은 전산화하는 데만 6개월이 걸린다고 위원회가 이미 밝힌 점을 감안하면 결국 피해조사 기간은 기록 전산화 기간보다도 짧은 4, 5개월에 불과할 전망이다.
공탁금 기록 외 별도로 위원회가 처리해야 하는 피해조사 건수도 10만여 건에 이른다. 위원회 관계자는 "처리가 남은 10만여 건과 공탁금 기록 17만여 건 중 중복되는 내용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모두가 일치한다고 해도 공탁금 기록 7만여 건만큼 일이 늘어난다"고 말했다.
반면 피해조사를 직접 담당할 조사관 수는 20명 가까이 줄어든다. 위원회 통합 전 조사관은 피해조사 담당이 50명, 보상지원 담당이 17명이었으나 통합 후에는 보상지원 담당 조사관을 포함해 50명으로 줄어들 것이 확실시되기 때문이다. 위원회 관계자는 "5일 기획재정부에 위원회 예산에 대해 최종 설명할 계획"이라면서도 "기재부는 현재 예산편성은 본예산이 아닌 예비비에서 집행하는 만큼 최소한만 주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위원회는 현재 정부가 위원장(차관급)을 임명해주지 않아 예산이 내려와도 피해조사 조사관 채용 공고조차 낼 수 없는 상황이다. 공탁금 기록을 전산화할 임시직원 채용도 마찬가지다. 피해조사 관련 활동시한이 예정대로 끝나는 것을 전제로 할 때 하루가 아쉬운 마당이지만 시간만 보내고 있는 셈이다.
유족회의 한 관계자는 "할 일은 늘었는데 조사인원과 기간도 줄이면 피해조사 자체가 제대로 안 돼 피해판정이 '기각'이나 '판정불능'으로 나올 확률만 높아질 것"이라며 "정부가 보상금을 줄여보려는 의도로 그러는 걸로밖에 생각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태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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