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프로기사 양상국 9단(61)이 진행하는 'EBS바둑교실'이 4일로 방송 1,000회를 맞는다. 1990년 12월27일 EBS 개국과 함께 첫회 방송이 시작된 후 20년간 단 한 번의 결방도 없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바둑계는 물론 방송계서도 그리 흔치 않은 장수프로그램이다. 얼마 전 희극인 송해씨가 진행하는 전국노래자랑이 30년을 맞았다고 해 화제가 됐지만 양상국의 EBS바둑교실 1,000회 돌파도 그에 못지 않은 대기록이다.
"우연한 기회에 방송 제의가 왔길래 바둑보급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한 번 부딪쳐 보자고 생각해서 시작한 게 벌써 20년이 됐네요. 사실 1,000회를 두어 달 앞두고는 약간 가슴이 설레기도 했지만 막상 1,000회분 방송 녹화를 마치고 나니 오히려 담담합니다."
EBS바둑교실 방송 초창기인 1990년대는 조훈현의 응씨배 우승에 이어 이창호가 각종 기전에서 활약하기 시작한 시기여서 바둑교실 프로도 덩달아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바둑에 대한 관심이 다소 떨어진 요즘도 확실한 고정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다고 한다.
"바둑은 시청자들의 충성도가 매우 강해서 한밤중이나 새벽에 프로그램을 편성해도 항상 꾸준한 시청율을 유지합니다. 그런데도 최근 공중파 방송에서 바둑프로그램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게 아쉽습니다. 그런 점에서 EBS가 20년간 뚝심 있게 바둑프로그램을 정규 편성해서 드디어 1,000회를 맞게 됐으니 오히려 저를 비롯한 바둑계가 크게 감사할 일이지요."
그동안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한 파트너도 20여명이 넘는다. 처음에는 법조계 바둑 강자인 전욱 변호사와 함께 1년 가량 진행하다 개그맨 엄용수, 만화가 강철수를 거쳤고, 남치형 김태향 이정원 현미진 강나연에 이어 하호정(3단)에 이르기까지 최근에는 주로 여자기사들과 호흡을 맞췄다.
EBS바둑교실은 지난달부터 공중파에서 위성채널인 EBS플러스2로 옮겨 일요일 오후3시부터 1시간 동안 진행된다. 진행 방식도 새롭게 바뀌었다. 단수 축 장문 등 기본 행마법부터 가르치는 초급자를 위한 강좌로 전환했다. 완전 초보자라도 6개월 정도만 열심히 바둑교실에 '출석'하면 두 자리 급수는 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한다.
1,000회를 거치면서 애환도 많았다. 특히 대국 전날 녹차를 끓이다가 크게 화상을 입었는데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진통제만 맞고 방송한 일, 녹화 일정 때문에 장인 어른의 발인에도 참석하지 못한 일 들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양상국 9단은 평소에도 한 가지 일을 시작하면 끝까지 밀고 가는 뚝심의 소유자로 정평이 나 있다. 1980년 5월24일부터 시작한 어린이바둑교실이 벌써 30년이 넘었으며 1997년부터 성균관대서 시작한 봄 가을 16주 코스의 바둑학 강의도 어느덧 14년째 지속되고 있다.
1980년대 세실배 아마대회를 만들어 16년을 지켰고 지송배 8년에 김성준배 5년을 주관했으며 소정회 초지회 등을 중심으로 한 아마추어 팬들과의 교류도 무척 끈끈하기로 유명하다. 최근 자전에세이집 '바둑의 길, 삶의 길'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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