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또한 어머니를 버린 자였으니/ 당신의 울음소리 듣고서도/ 당신의 외마디 비명 듣고서도/ 당신의 간절한 말씀 듣고서도/ 그저 아파할 뿐 당신을 공경하지 않았으니…"
홍일선 시인이 강을 어머니에 빗댄 시를 낭송하는 동안, 서예가 이두희씨가 길고 흰 천에 붓으로 '死대강 개발' '생명의 어머니 강물'이라고 써내려갔다. 현 정부의 역점 사업인 4대강 개발에 반대하며 만가(輓歌)를 읊고 만장(輓章)을 만드는 퍼포먼스였다. 그 뒤로 남한강이 쨍쨍한 햇빛을 튕겨내며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한국작가회의 저항의글쓰기실천위원회(위원장 도종환)는 3일 경기 여주군 남한강 개발 현장 일대에서 '시인이여, 사라지기 전에 기억하라'는 주제로 4대강 사업 반대 행사를 열었다. 구중서 작가회의 이사장, 이철수 민예총 부이사장 등 문인과 예술계 인사 50여명이 참석했다. '시위 불참 확인서' 요구 파문 이후 현 정부의 잘못된 시책에 대해 '저항의 글쓰기' 운동을 하겠다고 공언했던 작가회의는 최근 그 초점을 4대강 사업에 맞추기로 결정했다.
행사는 지난해 11월 남한강 상류에서 착공된 강천보 공사 현장 방문으로 시작됐다. 길 안내를 맡은 이항진 여주환경련 집행위원장은 "물을 가두면 수질이 나빠지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데도 정부는 보를 만들면 수질이 개선된다고 강변한다"고 비판했다. 일부 참석자들은 공사 현장을 촬영하다가 이를 막는 현장 직원들과 가벼운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인근 강변으로 자리를 옮긴 참석자들은 풍경뿐 아니라 강에 서린 기억마저 파괴하는 개발 공사에 항의하는 뜻으로, 10분 동안 말없이 강을 바라보는 침묵 시위를 벌였다. 이어 구중서 이사장은 "4대강 사업의 말로는 자업자득, 사필귀정, 전화위복이 될 것"이라고 성토했다. 김근 시인은 흰 천에 '백 년 넘게 아플 통증이 밀려옵니다', 김경주 시인은 '강은 제 깊은 속을 드러낼수록 멀리 흐른다'는 글귀를 썼다. 이들은 이어 신륵사로 이동, 수경 스님이 주관하는 수륙재(물과 뭍을 떠도는 귀신들을 공양하는 불교 의식)에 참석했다.
김남일 작가회의 사무총장은 "한강, 낙동강, 영산강, 금강 등 4대강 별로 문인 책임자를 정해 개발 반대 운동을 이어가고, 회원들의 강에 관한 글을 묶어 상반기에 출간할 것"이라고 밝혔다. 작가회의는 또 정부 지원금을 거부하며 정간했던 계간지 '작가'를 잡지와 웹진으로 조만간 복간하고, 5월 11일에는 '국가 권력과 작가'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 계획이다.
여주= 글ㆍ사진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