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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처녀작부터 최신작까지… '고발의 문학' 노벨상 뮐러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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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처녀작부터 최신작까지… '고발의 문학' 노벨상 뮐러를 만난다

입력
2010.04.05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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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지대 / 헤르타 뮐러 지음ㆍ김인순 옮김 / 문학동네 발행ㆍ268쪽ㆍ1만500원숨그네 / 헤르타 뮐러 지음ㆍ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발행ㆍ352쪽ㆍ1만2,000원

200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루마니아 출신의 독일 작가 헤르타 뮐러(57)의 소설 두 권이 국내 처음으로 번역됐다. <저지대> 는 뮐러가 독일로 망명하기 5년 전인 1982년 루마니아에서 출간한 첫 작품집이고, <숨그네> 는 지난해 발표된 작가의 최신작이다. 노벨문학상 수상 이전까지 뮐러가 구축한 문학세계의 시작과 끝에 각각 해당하는 책인 셈이다.

뮐러는 8월 국제비교문학대회 참석차 처음으로 방한한다. 그 전까지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 (1986) <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 (1992) <마음 짐승> (1994) 등 그의 장편 3권이 더 번역될 예정이다.

<저지대> 는 뮐러가 나고 자란 1950년대 루마니아 바나트 지방의 독일계 마을을 배경으로 한 단편 19편이 수록된 연작소설집이다. 2차대전 전후의 루마니아 역사를 살피면 작품 읽는 데 도움이 된다. 루마니아는 1941년 군 장교 출신인 이온 안토네스쿠가 쿠데타로 파시스트 정권을 수립, 독일 나치 정권과 동맹을 맺고 전쟁을 치렀다. 이후 전세가 연합군으로 기울면서 안토네스쿠 정권은 몰락하고, 1948년 소련의 영향을 받은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선다. 독일계 주민들에겐 그야말로 천당에서 지옥으로 추락하는 상황이었다.

뮐러는 <저지대> 를 통해 이처럼 전후의 강압적 사회주의 치하 루마니아에서 살아가는 독일계 소수민들의 음울한 삶을 어린 소녀의 눈을 통해 묘사한다. 표제작은 고루한 가부장적 전통이 지배하는 농촌 마을의 암울한 일상을 그린다. 소녀의 가족도 예외는 아니어서 아버지는 늘 술에 취해 살면서 걸핏하면 아내와 딸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어머니는 강박적으로 집안을 쓸고 닦는 일로 수난을 견딘다. 밥상에서 물 달라는 말조차 꺼낼 수 없을 만큼 침묵이 강요되는 분위기 아래서 소녀는 들판이나 강가, 혹은 꿈의 세계를 도피처로 삼는다.

시적인 운율이 느껴지는 짧고 간결한 문장으로 뮐러는 소녀의 불안과 몽상을 유려하게 표현한다. 2차대전 당시 나치로 활동하며 갖은 패악을 저지른 탓에 마을 사람들이 증오하던 소녀의 아버지의 장례식 풍경을 묘사한 짧은 단편 '조사(弔詞)'는 뮐러가 구사하는 문장의 아름다움이 특히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또 당국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고된 번역가의 사연을 담은 자전적 단편 '잉게' 등은 뮐러가 이후 작품에서 표출하는 루마니아 독재 정부에 대한 강한 비판의식을 예고한다.

<숨그네> 는 전후 소련 강제수용소로 이송된 열일곱 살 소년의 삶을 섬세하게 그린 장편이다. 뮐러는 자신처럼 루마니아에서 독일로 망명한 시인 오스카 파스티오르(1927~2006)가 5년 동안 우크라이나 강제노동수용소에서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썼다. '숨그네'는 인간의 목숨이 삶과 죽음 사이를 그네처럼 오가는 상황을 뜻하는 뮐러의 조어(造語)다.

소설은 소련이 전후 재건을 위해 루마니아의 독일계 소수민을 징집하는 과정에서 차출된 소년 레이폴트 아우베르크를 화자로 진행된다. 강제수용소로 끌려간 사람들은 매일 이어지는 중노동과 밑바닥 없는 고독 속에서, 산 채로 늘 죽음의 언저리를 맴도는 고통스러운 일상을 겪는다. 고향으로 무사 귀환해 대도시로 이사하고 결혼한 후에도 주인공의 공포는 가실 줄 모른다. 작가는 구체적이고 생생한 수용소 묘사를 통해, 인간의 생애 전체를 결정짓는 강렬하고도 원초적인 고통을 고발하고 있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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