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클래식 매니지먼트 사업을 하고 있는 지인을 만났다. 그는 김연아의 올림픽 우승 효과가 6조에 달한다면 탄생 250년이 지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차르트의 가치는 얼마일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스포츠처럼 순간적이고 강하지는 않더라도 세기를 넘어 효과를 지속하는 클래식 분야에 정부와 기업의 지원이 인색한 것이 안타까워 꺼낸 이야기였다.
모차르트가 조국 오스트리아에 기여한 바는 감히 액수로 환산하기 힘들다. 고향 잘츠부르크는 음악의 성지로 각광받으며 관광수익을 올리고 있고, 심지어 모차르트가 그려진 황금색 초콜릿도 대표적 관광 상품이 되었다. 사후 2세기가 넘었지만 모차르트는 영화의 주인공으로서, 그의 음악은 벨 소리부터 태교 음악으로 아직도 무한한 마케팅 가치를 지닌다.
폴란드가 바르샤바 공항을 쇼팽 국제공항으로 명명하고 쇼팽 탄생 200주년을 맞아 기념지폐까지 발행하며 대대적인 행사를 벌이고 있다. 음악 축제 외에 최첨단 박물관과 음악을 듣고 다운로드 할 수 있는 쇼팽 벤치를 설치하는 등 쇼팽을 국가 브랜드 전면에 내세웠다. 몇 해 전, 폴란드 제 2도시 크라쿠프 근교에서 공연 할 당시 낡은 공항과 허름한 아파트들에서 어둡고 음울한 인상을 받았다. 그 후 폴란드 하면 회색 빛이 연상되었으나 그런 나에게도 ‘쇼팽의 나라, 폴란드’ 라는 말은 다른 이미지로 떠올리게 한다. 화려함과 세련미의 정수인 쇼팽 음악의 이미지가 그대로 폴란드의 이미지에 오버랩 되어서다.
대다수 음악인들의 브랜드 파워가 사후에 키워져 정작 본인은 혜택을 못 받은 것과 달리 카라얀처럼 정부 지원을 발판으로 생전에 음악계의 제왕이 된 경우도 있다. 1930년대, 나치에 미온적인 지휘자 푸르트뱅글러를 견제하기 위해 독일 정부는 신예 카라얀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학자 프리베르크는 카라얀이 언론의 비호 속에 30대에 전설적인 경력을 쌓은 것에 유감을 표했다.
종전 후 나치에 호의적이었다는 비난 또한 카라얀의 활동을 주춤하게 했다. 그러나 카라얀의 음악적 감각과 대중적 인기에 결국 베를린 필은 그를 수석 지휘자로 선택했다. 당초의 정치적 의도에 대한 논란을 떠나, 재능 있는 젊은 음악인을 후원한 결과로 독일은 반세기 동안 엄청난 음반 수익을 창출한 카라얀과 베를린 필이라는 문화의 대표주자들을 얻게 되었다.
20세기에 카라얀이 있었다면 21세기에는 LA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인 베네수엘라 청년 두다멜이 있다. 그는 클래식이 사회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저소득층 예술교육시스템 ‘엘시스테마’ 출신이다. 두다멜의 성공은 가난한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타성에 젖었던 음악인들에게 사명감을 불러 일으켰다. 정부의 전폭적 지원과 바렌보임, 아바도 같은 저명한 지휘자들의 극찬에 힘입어 화려한 경력을 쌓은 두다멜은 이미 20대에 세계적 스타가 되어 조국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우리에게도 국가의 위상을 높일 잠재력을 지닌 많은 음악적 자원이 있다. 지난주 폐막한 통영국제음악제도 그 중 하나이다. 현대음악의 세계적 거장 윤이상의 고향에서 열리는 이 음악제는 윤이상 국제 콩쿠르와 더불어 통영을 세계 음악계에 조금씩 알리고 있다. 올해는 객석 점유율이 90%를 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자연이 아름다운 통영의 이미지에 윤이상이 상징하는 모던함을 입힌 통영국제음악제가 모차르트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처럼 세기를 넘어 널리 알려지기를 기대해본다.
김대환 바이올리니스트·국민대 예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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