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재난상황이라 먼저 얘기할 처지는 안 되고 하루빨리 인양하기만 바라야죠.”
백령도 주민들이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다. 물살이 약해지는 조금 때에 맞춰 까나리 조업에 나서야 하지만 천안함 인양작업이 언제 마무리될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고 지점과 군 당국의 인양 작업 해역이 바로 까나리 어장이라는 점이 문제다.
천안함 인양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5일 오전 장촌 포구에는 ‘출항 허가’를 알리는 노란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지만 조업에 나서는 배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어민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어구 손질에 여념이 없었다.
한만희(52) 수협지점장은 “20일부터는 까나리 작업을 나가야 하는데 이달 중순까지 천안함 인양 작업을 끝낸다고는 하지만 언제 끝날지 장담할 수 있겠느냐”며 “드러내놓고 말은 못해도 선체 인양 작업이 빨리 끝나기를 기다리는 어민들이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수협 관계자는 “까나리는 꽃게와 함께 백령도 주민의 주수입원인데 이번 까나리 철에는 어획량이 많이 줄어들 것 같다”고 걱정했다. 까나리 조업을 위해 그물을 치려면 어장 근처에 닻을 미리 갔다 놔야 하는데 인양 작업으로 인해 닻을 갔다 놓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어민들 설명이다.
해삼ㆍ전복 조업을 주로 하는 배종진(62)씨는 “7일부터 13일까지 물살이 약한 조금 기간에 조업을 해야 하는데 선체 인양 시기와 겹쳐 조업 차질이 예상된다”며 “이달부터 다음달까지 백령도 특산품인 까나리 조업으로 1년을 먹고 사는 사람들도 있는데 필요하면 군 당국에 협조를 요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관광객이 줄어들까 걱정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아직은 비수기지만 성수기인 이달 중순부터는 아무래도 영향이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백령면 관광안내소 관계자는 “요즘 들어 ‘섬에 들어가도 괜찮으냐’는 문의 전화가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최근 옹진군수가 주재한 긴급 이장단 회의에서는 사고 수습 때까지 주민들이 자숙하자는 얘기도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래저래 백령도 주민들의 속도 타 들어가고 있다.
백령도=이성기 기자 hang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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